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논설위원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다. 지난 것은 그리워지고 올 것은 기다려지는 법이다. 2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서귀포시는 2002년, 한 화가의 예술혼을 기리고 산남의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전시관을 개관했다.
이중섭미술관은 그렇게 시작됐다. 바람결 같은 인연의 끈으로 이중섭과 서귀포는 한국전쟁의 와중에 만났다. 이중섭은 가족과 함께 피란 이후 가장 행복한 시간을 서귀포에서 보냈다. 그때 게(蟹)는 절친이 됐다. 절친을 그린 작품은 100점을 훌쩍 넘긴다.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 ‘그리운 제주도 풍경’이다.
‘그리운 제주도 풍경’은 부산에서 일본에 있는 부인에게 편지와 함께 보낸 그림이다. 그림은 서귀포 자구리 해안에서 두 아들이 게들과 함께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을 이중섭 부부가 흐믓하게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림에는 두 아들의 이름과 엄마, 아빠라는 글자와 더불어 ‘그리운 제주도 풍경’이라고 적혀 있다. 편지 끝부분에는 ‘제주도의 게에 대한 추억이라오, 태현이와 태성이에게 보여주구려.’라고 적혀 있다. 태현이는 큰아들 이름이고 태성이는 작은아들 이름이다.
회고해 보면 이중섭이 현해탄 너머 가족이 그리울 때면 저절로 떠올랐던 곳이 바로 서귀포라는 사실이다. 향수병이라고 했던가.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곧 그리움이라면, 그리울 때마다 떠오르는 서귀포가 이중섭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인 셈이다. 온통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배어 나오는 이중섭 그림은 오늘날 많은 이에게 감동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이중섭미술관에서 손이 닿을 듯한 이중섭 거주지는 이중섭 가족의 체취가 남아있어 남국의 애수가 느껴지는 곳이다.
2024년 11월, 이중섭미술관은 그동안 많은 관람객의 사랑과 관심으로 인파가 몰리면서 공간 확장에 대한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서귀포시는 미술관의 쾌적한 관람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옛 미술관을 헐고 그 자리에 새 미술관을 짓는다는 계획하에 2027년 3월 역사적인 재개관을 목표로 시설 확충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새 미술관을 짓는 동안 관람 서비스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이 막간에 작은 전시회라도 마련해 물 넘고 산 넘어 서귀포를 찾아온 관광객을 실망시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중섭미술관은 인근에 있는 창작스튜디오 전시실을 ‘이중섭 전시공간’으로 활용해 새 미술관 건립 동안 이중섭 아카이브 전시를 진행한다. 안타깝게도 이중섭 원화를 걸 수는 없지만 40여 년간의 이중섭의 삶과 예술을 시기별로 나눠 소개하는 등 새로운 전시 패러다임으로 관람객을 맞이할 것이다.
이중섭 전시공간에서는 이중섭이 살았던 시기를 ①1916~1943년=출생에서 일본유학시기 ②1943~1950년=원산시기에서 6·25 전쟁시기 ③1951년=서귀포 피란시기 ④1952~1953년=부산시기 ⑤1953~1954년=통영시기 ⑥1954~1955년=서울시기1 ⑦1955~1956년=서울시기2로 나누어서 그의 삶의 여정과 예술세계를 조명한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이중섭 탄생부터 일본 유학을 마치고 원산으로 귀국하기까지의 예술 활동과 삶의 여정을 세 가지 시기로 구분해 각각의 시기별 작품 이미지와 사진 자료 등으로 구성했다.
새 미술관을 위한 막간의 전시회는 연극의 장면 전환처럼 더 나은 전시를 위한 완충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