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은 점자의 날이었다. 점자의 날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만든 6점식 한글 점자를 만들어 반포한 1926년 11월 4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은 2020년, 점자법이 개정되면서 법정기념일이 됐다.
한글 점자를 만든이는 송암 박두성 선생(1888~1963)이다. 일제 강점기, 장애인교육기관인 제생원 교사였던 송암은 시각장애인을 교육하면서 일본어로 된 점자는 있어도 한글 점자는 없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1920년, 점자 연구를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1923년에는 비밀리에 제자들과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해 한글 창제원리를 연구하면서 한글 점자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고 그 자신 실명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6점식 한글 점자가 만들어진 것은 3년이 지난 1926년이었다. 시각장애인을 새로운 세상과 연결해주는 한글 점자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는 ‘훈맹정음(訓盲正音)’이란 별칭을 붙였다. 훈맹정음은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서도 그 기반을 함께 사용하는 남북한 문자가 됐다.
사실 한국 점자의 시작은 더 오래전으로 올라간다. 1894년 미국 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이 뉴욕 점자를 바탕으로 한국어에 맞게 개발한 4점식 점자가 그 시작이다. 평양맹아학교를 운영했던 로제타 홀은 이 점자로 평양의 시각장애인 소녀들을 가르쳤다. 로제타 홀의 4점 점자가 '평양 점자'로 불리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4점 점자는 한글을 쉽게 읽을 수 있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이 한계를 보완해 한글을 쉽게 읽고 표기할 수 있게 개발한 것이 송암의 훈맹정음이다. 당시 시각장애인들에게 이 훈맹정음은 암흑의 세계로부터 빠져나와 새로운 빛을 안겨준 선물이었다.
그 뒤 한글 점자는 여러 차례 보완되고 수정을 거쳤다. 1996년에는 한글 점자에 관한 '한국점자규정'을 제정, 표준 한국 점자가 고시됐다.
우리말 점자의 역사는 이제 100년을 맞고 있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점자의 쓰임은 여전히 미미하다. 통로는 있으나 정작 문이 막혀 있는 형국이다.
마침 디지털 점자 기술의 진화가 관심을 끌고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 등 공공 문화시설에 디지털 점자 기술을 적용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도입도 늘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디지털기기 전문 업체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작품을 디지털 점자와 오디오 북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이 모두가 ‘눈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닫히고 세상도 닫힌다’고 했던 송암의 훈맹정음이 가져온 결실일 터. 돌아보니 훈맹정음의 존재가 새삼 빛난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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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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