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9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던 산란계 사육면적 확대 정책을 2년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법 위반에 따른 과태료 부과 등 행정처분 적용을 유예함으로써 실질적 제도 시행 시점을 2년 뒤로 미루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생산자단체들은 정부가 법적 쟁점을 명확하게 해결하지 않은 채 제도 시행을 밀어붙인다고 주장해 논란이 예상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일 관련 보도자료를 내고 “2025년 9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산란계 한마리당 사육면적을 확대하는 정책 도입을 2년간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017년 8월 달걀 살충제 성분 검출 사태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등을 계기로 동물복지 정책을 추진했다. 그 일환으로 2018년 9월 ‘축산법’ 시행령·시행규칙을 개정해 축산업 허가·등록 요건 중 산란계 한마리당 케이지면적을 0.05㎡(0.015평)에서 0.075㎡(0.023평)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신규 농가는 2018년 9월1일부터, 기존 산란계농가는 2025년 9월1일부터 사육밀도를 조정해야 했다.
정부 발표는 2025년 9월부터 입식하는 산란계의 사육밀도는 새 규정(0.075㎡)을 준수하도록 하되, 기존 규정(0.05㎡)대로 사육하는 농가에 대해서는 과태료 부과 등 행정처분을 유예함으로써 전면 시행을 2027년 9월로 미루겠다는 것이다.
유예안을 내놓은 데는 생산자단체의 거센 반발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대한산란계협회는 정부 정책이 시행되면 산란계 사육마릿수가 감소해 댤걀 생산량이 급감하는 등 산업에 끼치는 피해가 크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여왔다. 10월엔 정부 정책을 무효로 해달라는 헌법 소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산란계협회는 이번 유예안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20일 내놓은 ‘정부 발표 유예안의 문제점’이라는 설명자료를 통해서다. 협회에 따르면 유예안과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쟁점은 크게 두가지다.
우선 달걀껍데기(난각) 사육환경 표시문제가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25년 9월1일부터 ‘축산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 사육환경 번호 중 기존 케이지(0.05㎡)에서 사육했음을 뜻하는 ‘4번’은 법적으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2027년 9월 이전까지는 기존 농가에 대한 과태료 처분을 유예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해당 기간 기존 케이지에서 사육한 산란계들이 여전히 달걀을 생산할 가능성이 크다. 이때 기존 케이지에서 생산된 달걀의 난각 번호를 ‘3번’(0.075㎡ 사육)으로 표시하면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식품표시광고법)’, ‘4번’으로 표시하면 ‘축산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게 협회의 주장이다.
협회는 농식품부의 유예 방침이 상위법인 ‘축산법’에 위배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사육면적에 대한 단속 권한은 각 지방자치단체에 위임돼 있는데, 내년 9월 이후 소비자 등이 사육면적 규정 위반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을 때 지자체가 단속이나 행정처분에 나서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협회 관계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련 부처와의 협의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라 제도 시행에 따른 혼란이 클 것”이라고 비판했다.
농식품부 축산경영과 관계자는 “행정처분 유예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내년도 축사시설 현대화사업 자금을 올해보다 200억원가량 증액해 농가의 시설 변경이 원활하도록 돕는 한편, 식약처와 협의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우 기자 minwoo@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