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용와대의 흑역사

2025-01-14

윤석열 대통령이 연 용산 시대를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용산 시대는 윤 대통령의 1호 공약이었다. 민생을 살피는 정책도 아닌, 집무실 이전이 그렇게 중요한가. 아리송해 하는 국민을 위해 윤 대통령은 대선 당선 열흘 뒤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청와대가 조선총독부 시절부터 이어진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한번 들어가 살기 시작하면 못 나오니 단 하루도 청와대에 살 수 없다며 정한 용산 입주날은 취임식이 열리는 5월 10일이었다. 60일 만에 본관과 대통령 집무실, 세 개의 경호동과 두 개의 비서동, 출입기자단이 위치한 춘추관까지 옮겨야 했다. 결국 윤 대통령은 취임식 날 첫 업무를 공사 중인 정식 집무실이 아닌 보조 집무실에서 봐야 했다.

이사 과정은 제왕적이었더라도 기대한 것은 용산 시대의 청사진이었다. 북악산 기슭에서 나와 서울 한복판으로 집무실을 옮기는 것이 국민과의 소통을 위함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 일하고 있는 모습과 공간을 국민이 공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정신적인 교감이 중요하다”고 했다. 사실 용산시대는 새로운 제언은 아니었다. 이전부터 청와대의 폐쇄성을 지적하며, 미군으로부터 반환되는 용산공원으로 집무실을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꽤 있었다. 청와대가 한옥을 콘크리트로 흉내 낸 짝퉁 건축이어서, 풍수지리상 터가 좋지 못해서, 청와대만 들어가면 불통이 돼서…. 대통령실 이사 이유는 차고 넘쳤다.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청와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통상 건축물을 설계할 때 본 설계 전 기획 설계에만 수개월을 쓴다. 터와 어우러지고 외형적으로 근사한 건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간에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이다. 제대로 기획해야 예산에 맞게 짓고 알맞게 사용할 수 있다. 일반 건축물도 그러한데 새 시대의 정신을 담아 변화하려는 대통령의 집무실을 위해선 더 철저한 기획이 필요했다. 그러나 물리적인 이사도 버거운 일정에 쫓겨 이런 기획이 제대로 됐을 리는 만무하다. 결국 축소하겠다는 대통령실 조직은 기존 청와대만큼 방대해져 ‘용와대’라고 불린다. 이사 비용이 497억원(대통령실)인지, 1조원(더불어민주당)인지 논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며 청와대를 나왔지만, 용산에서 또다시 고립됐다. 결국 바뀌어야 할 것은 공간만이 아니었다. 후진적인 정치 문화와 통치 시스템부터 바뀌지 않으면 차기에 대통령 집무실을 어디로 옮긴들 불통 흑역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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