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수명 9년 격차

2025-01-05

조선 실학자 이익이 <성호사설>에 ‘노인십요’(老人十拗)라는 글을 썼다. 그가 묘사한 노인이 겪는 열 가지 좌절은 이렇다. 대낮에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으며, 울 때는 눈물이 없고, 웃을 때는 눈물이 흐른다. 30년 전 일은 기억해도 눈앞의 일은 문득 잊어버리며, 고기를 먹으면 뱃속에 들어가는 것이 없어도 모두 이 사이에 낀다. 흰 얼굴은 도리어 검어지고 검은 머리는 도리어 희어진다.

이익은 노화로 인한 신체 변화를 재치 있게 적었다. 지금 나이 든 사람들의 한탄과 어찌 그리 똑같은지 웃음이 난다. 새해가 된 이맘때쯤 나오는 “이렇게 또 한 살 먹는구나”란 흔한 푸념도 결국 노화에 대한 두려움이 스며든 반성일 것이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20년 기준 84.55세다. 건강수명은 이에 크게 못 미치는 71.82세다. 건강수명은 기대수명에서 질병 또는 장애를 가진 기간을 제외한 수명이다. 그러니까 한국인은 약 72년 건강하게 살다가 13년은 병원을 들락거리는 신세로 지내야 한다는 뜻이다. 윤석준 고려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 연구팀은 2008년부터 2020년까지 건강보험 데이터를 토대로 소득 수준과 건강수명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다.

소득도 관련이 있었는데, 부자가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 소득이 가장 많은 층의 건강수명은 74.88세였다. 반면 소득이 가장 낮은 층은 66.22세로, 8.66년이나 차이가 났다. 건강수명도 계층별 격차가 커졌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연구팀의 분석은 건강수명이 짧은 집단을 우선 고려해 건강 불평등 해소 전략을 마련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엔 ‘골골 팔십’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장수가 으뜸이었다. 하지만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선 자리 보전하고 누울까봐 겁이 난다. 그래서 100세 시대 희망 사항은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2~3일 앓다 죽는 것)라고 한다. 잘 먹고, 잘 자고, 꾸준히 운동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는 개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일이다. 건강하게 늙는 것이 부자들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일이 될까 두렵다. 모든 세대가 ‘노인을 위한 나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노년은 누구에게나 곧 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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