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나왔어요. 내가, 우리가 버티고 서 있는 곳만큼은 지킬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머릿수 하나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경기 시흥시에 사는 이예라씨(36·사진)는 지난 14일 남편 방진석씨(38)와 함께 여덟 살 딸 미류양의 손을 잡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을 찾았다. 태어나서 처음 ‘집회’에 참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지 못해 착잡하고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로는 화도 많이 났지만 무기력함이 더 크더라고요. 국민으로서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데에는 국회의사당에서 400m 떨어진 곳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가 큰 영향을 미쳤다. 윤 대통령이 심야에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자마자 시민들은 국회 앞으로 달려왔다. 시민들은 계엄군이 몰고 온 전술차량을 맨몸으로 막아섰고, 매일 집회를 열어 “윤석열 퇴진”과 “국민의힘 해체”를 외쳤다.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들고 난생처음 시위에 동참한 초등학생부터 ‘계엄 2회차’를 경험한 60대까지, 연인원 수백만명이 한목소리로 국가의 주인은 국민임을 외쳤기에 민의의 전당이 지켜질 수 있었다.
열두 살 초등학생 유지민·노윤아·고효민·김시은양은 인천 마전동에서 출발해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국회 앞으로 왔다. 각자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스트레이키즈·아이브·엑소의 응원봉을 챙기고 패딩에 목도리까지 칭칭 감았다. 1시간 넘게 걸려 집회 장소로 오는 동안 기분은 “무섭지만 설렜다”고 했다.
유양은 지난 3일 밤 쇼트 플랫폼 틱톡에서 영상을 넘기다가 비상계엄 소식을 알게 됐다. 유양은 “역사 교과서에서나 배웠던 ‘계엄’이라는 걸 내가 경험할 줄은 몰랐다”며 “아직 어리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도 알 건 다 알고 뭐가 잘못인지도 안다”고 말했다.
아들 김태규씨(32)와 함께 온 김경돈씨(63)는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10월 유신’을 선포했을 때 겪은 계엄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아버지 김씨는 “그때만 해도 모든 뉴스와 정보가 차단돼 소식을 알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시민이 더 깨어 있는 시대”라며 “대통령에게, 그리고 국회에 우리 시민들이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새터민 이소연씨(50)에게 비상계엄은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무서운 경험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북한이 공격한 줄 알고 탈북민부터 잡아가면 어떡하나 너무 무서웠다”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도저히 이 대통령은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집회에 나온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문석호씨(49)는 “역사의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고 했다. 문씨는 “탄핵안 가결 자체는 다행이지만 이를 끝까지 외면한 국회의원들도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