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모방의 경계는 어디?" 쏟아지는 AI 콘텐츠에 저작권 갈등 심화

2025-02-13

[비즈한국] #세계 최대 경매회사 영국의 ‘크리스티(Chrisris's)’가 사상 첫 인공지능(AI) 미술 전용 경매를 연다. ‘증강 지능(Augmented Intelligence)’이라는 이름의 이번 경매는 오는 2월 20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 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앞서 크리스티가 AI 작품을 판매한 적이 있지만 AI 작품만으로 경매가 구성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예술계에선 즉각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계획 발표 다음 날인 8일 예술가들이 무단 학습 문제를 제기하며 회사에 개최 반대 서한을 보냈고, 나흘 동안 4800여 명의 예술가들이 동참했다. 크리스티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작품을 내놓은 예술가들은 모두 강력하고 여러 방면에서 예술 활동을 펼쳐왔으며, 일부는 주요 박물관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경매작들은 AI를 활용해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라고 해명했다.

#한 달에 10달러(약 1400원)면 노래 500곡을 만들 수 있는 AI 음악 생성기는 극강의 효율성으로 산업 지형을 흔들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AI 자작곡에 앨범 커버나 배경 이미지를 입혀 스트리밍 콘텐츠를 제공하는 채널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최근 구독자와 조회 수를 빠르게 늘리고 있는 격투기 선수 추성훈 씨의 채널에서도 AI 음악이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에피소드마다 매번 다른 배경음악이 흘러나오는데 ‘B급’ 감성을 살린 연출로 호응을 얻고 있다.

AI 음악이 확산하는 만큼 창작자들과의 충돌도 본격화하고 있다. 음악 생성 AI의 대표격인 ‘수노(Suno)’는 지난해 3대 음반사 소니·유니버설·워너 뮤직에 이어 지난달 21일 독일 음악저작권협회(GEMA)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수노는 유료 가입자에게 유튜브 수익화를 포함해 상업적 이용을 열어뒀는데, 음반 산업계는 AI 훈련에 방대한 양의 음원들이 허락 없이 사용됐다고 주장한다.

#‘AI 기본법’ 있지만 AI 콘텐츠 저작권은 ‘난제’

생성형 AI의 부상은 콘텐츠 산업 전반에 저작권 전쟁을 불러일으켰다. AI를 창작에 활용할 때는 저작권 침해 가능성이 상존한다. AI는 기존의 수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콘텐츠를 일반 작가나 작곡가, 연출가가 만든 결과물과 동일 선상에 둘 수 있는지도 논쟁거리다. 현행 저작권법 해석에 따르면 ‘인간의 창작물’만 저작물에 해당하지만, AI​ 창작물에 인간이 자신만의 표현을 추가했다면 기여한 부분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가질 수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은 유럽에 이어 두 번째로 AI 산업 관련 포괄적인 법안을 마련했다. 산업 진흥에 무게를 둔 AI 기본법 시행으로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만 학습 데이터 기록 보관 및 공개 등의 규정은 빠져 한계도 지적된다.

국회는 AI의 저작권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12일 국회에서는 관련 토론회가 개최됐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는 ‘AI로 제작된 콘텐츠는 누구의 것인가’를 주제로 진행됐다. 국민의힘 AI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철수 의원은 “콘텐츠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분야다. 한국은 데이터 양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품질을 확보하기도 만만치 않은 현실에 처해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만화도 ‘긴장’…AI 콘텐츠의 면책권·저작권 어디까지일까

AI의 발달으로 창작자와 기존 사업자들의 위기감은 점차 커지고 있다. ‘적’은 외부에만 있지 않다. 월트디즈니컴퍼니는 2년 전 배우의 얼굴 나이를 자유롭게 조작하는 AI 시스템을 개발했다. CG기술로는 영상 가공 수정에 몇 주까지도 소요됐지만, AI 연령 조작 툴을 활용하면 배우의 노화와 회춘 효과를 손쉽게 조정할 수 있다.

이는 한편으로 메이크업 아티스트나 특수 촬영 미술 분야의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생성형 AI는 높은 추론력으로 ‘디지털 디에이징’ 기술에서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 능력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면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오는 19일 개봉하는 톰 행크스 주연 영화 ‘히어’는 AI 기술을 영화 전체에 도입한 할리우드 최초의 장편영화다. 주인공의 탄생부터 황혼까지를 다룬 이 영화에도 디에이징 기술이 사용됐다.

김인수 시네마서비스 대표는 “영화가 지구상에서 가장 단명하는 예술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라며 AI 기술과 영화의 결합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앞서 할리우드는 지난해 63년 만에 진행된 대규모 파업을 계기로 AI 관련 합의를 일부 이뤄낸 바 있다. 김 대표는 “할리우드의 합의 사항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작가의 권리 및 기여도를 침해하는 데 결코 사용될 수 없다’는 조항”이라며 “모든 인류에게 이익이 되도록 한다는 AI 헌장까지 나왔지만 저작권과 카피레프트(저작권 공유) 사이에 균형점을 찾는 것은 어려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AI로 만든 창작물이 저작권을 가질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수년 전부터 작품성과 저작권 논란이 이어진 AI 그림은 논쟁의 중심에 있다. 미드저니로 제작된 18쪽의 그래픽노블 ‘새벽의 자리아’는 미국 저작권청에 저작권이 등록됐다가 뒤늦게 취소됐다. 이에 대해 나단경 변호사(법무법인 모두의 법률)는 “편집 저작물로는 등록을 해줬다. 이는 이 이미지를 선택하고 배열하는 작업에 인간의 창작성이 일부 인정됐다는 개념이다. 다만 AI 산출물 그림 자체에는 저작권 부여를 거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진영 한국저작권위원회 본부장은 “저작권의 역사는 저작권 보호 범위 확대의 역사다. AI 생성물도 앞으로는 보호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며 “이미 중국 등 해외에서는 AI 생산물의 권리를 인정하는 판례들이 나왔다”고 말했다.

AI 저작권 문제는 콘텐츠에 국한되는 사안이 아니다. 특히 중국의 AI 모델 딥시크 충격 이후 전 산업군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국내외 기업과 공공기관들은 일제히 딥시크 사용 금지령을 내리거나 차단 조치를 취했다. 딥시크를 상대로 임시조치는 했지만, 국내 기업들은 앞으로 미국 등 주요 국가의 지식재산권 정책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이 깊다.

여기서 수익화 모델을 찾은 기업도 있다. LG는 AI연구원의 첫 사업화 모델 ‘넥서스(NEXUS)’를 10~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AI 행동 정상회의’에서 공개했다. 다양한 국가의 저작권법과 판례, AI 규제 등 위험요소를 자동으로 분석해 불법 수집 데이터를 사전에 걸러내는 솔루션이다. 데이터 권리 보유자와 AI 모델 개발사의 분쟁을 줄이겠다는 것이 목표다.

관련자들은 국내 산업의 대외 관계와 영향 등을 충분히 고려한 정책 방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토론회를 주최한 김재섭 의원은 “AI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졌지만 개인 정보 유출 등의 보안 문제 등 잠재적인 위협 역시 지니고 있다”며 “창작의 자유를 보호하면서도 AI 기술도 함께 발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법적 틀을 마련하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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