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전반부인 젊은 시절에는 여러 가지 선택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전과 달리 세상과 일에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는 중장년의 연령대에 이르러보니 젊은 시절에는 쉽던 선택이 이제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단순하게 일에 대한 생각해보아도 그러하다. 중장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삶의 주된 일자리를 벗어나서 일자리를 찾을 때 이전과 달리 선택의 어려움을 느끼고, 선택하더라도 실제 재취업까지 연결이 어렵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느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이도 들었고, 세상과 기술의 변화에 따라 자신에게 불리한 여러 가지 조건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연령대에 따른 바람직한 연결과 단절
중장년이라는 연령대에 이르러서는 이전과 다른 ‘지혜로운 선택을 통한 연결’이 필요하다. ‘지혜로운 연결’은 그 의미 속에 ‘지혜로운 단절’도 포함한다는 전향적인 생각도 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한 가지의 연결은 한 가지의 단절을 동반한다는 의미다. 아래의 몇 가지 삶의 변화 방법을 참고해 보자.
첫째, 이전에는 ‘쌓기’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빼기’도 고려할 때가 됐다. 이전 삶에서 축적한 것을 소비하고 하나씩 베풀어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둘째, 여태껏 ‘대확행(크고 확실한 행복)’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면서 소소한 행복의 연결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면 어떨까. 소소함의 연결 속에서 오히려 ‘대확행’ 못지않은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 양적인 개념에서 질적인 개념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셋째, 온전한 일자리를 통한 보수보다는 조각 일거리를 통한 보수에도 만족해 보자. 이전에는 ‘많을수록 좋다’라는 생각을 가졌다면 이제는 ‘적어도 충분하다’라는 전향적인 생각도 해봄 직하다. 자녀들이 자기 발로 서기 시작하면서 부모의 의무에서 벗어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전과 달리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넷째, 젊디젊은 시절에는 높은 ‘에베레스트 등정’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가벼운 ‘뒷동산 등정’을 목표로 삼아보면 어떨까. 격렬함은 이제 젊은이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가벼운 뒷동산 등정이나 산보를 하듯이 목표의 수준도 자신의 발걸음에 맞게 수립해 보자.
다섯째, ‘늘어남의 미학’에 빠져들었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줄어듦의 미학’도 받아들여 보자. 물질적인 늘어남이 젊은 시절의 목표였다면 중장년에 이르러서는 정신적인 성숙과 내적 성장을 목표로 하는 ‘줄어듦’도 만족스러울 수 있다.
‘줄어듦의 미학’을 포용한 사례
오랫동안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연 1억 대에 가까운 보수를 받고 50대 중반에 이르러 퇴직한 경화동 씨는 인생 2막에서도 변함없이 열정적으로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각종 취업포털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올려놓고 ‘곧 많은 곳에서 연락이 올 거야’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기업 3곳에서 연락이 왔는데 모두 공기청정기나 사슴농장 녹용, 건강 관련 기기 등을 판매하는 다단계회사였다. 당장 면접을 보기 위해 만나보자는 그들의 모습도 탐탁지 않았다. 퇴직 직전에 퇴직자를 대상으로 한 전직 지원 교육을 통해서 그런 사업 내용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경 씨는 퇴직 이전에 열심히 학습해 자격증을 취득한 물류나 무역 쪽 일도 하고 싶었으나, 기본 보수나 근무 지역이 생각과 많이 달라서 지원을 망설이게 됐다. 인적 네트워킹을 통해서 인생 1막의 주된 일자리와 연계된 업무에 재취업을 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 역시 경쟁이 심하고, 일자리도 많지 않는 등 만만치 않았다.
여러 노력에도 희망하던 출구를 찾기 힘들었던 그는 시간을 가지고 원하는 바를 탐색하고자 자신이 거주하는 시에서 주관하는 ‘사회공헌형 일자리’에 지원했고, 선발돼 일하고 있다. 이전에 비해 보수가 엄청나게 줄어들어 월 60만 원을 조금 넘어서는 보수를 받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는다는 생각 때문에 삶의 그 어느 시점보다도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더불어 그곳에서 동일한 상황에 부닥친 여러 중장년과 대화하면서 색다른 미래도 모색하고 있다.
남들은 그가 재취업에 쏟은 시간을 ‘공백기’로 보지만 그는 그 시간을 미래를 위한 ‘여백기’로 생각한다. 그는 “더하기가 아닌 빼기를 선택하고, 늘어남이 아닌 줄어듦을 포용하니 더없이 행복하다”라고 이야기한다.
이제는 ‘욕심 아닌 욕심’, ‘많음이 아닌 많음’이라는 역설적 삶을 추구해 보자. 그렇게 해보면 ‘줄어듦의 미학’이 ‘늘어남의 미학’이라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