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연내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는 국내 데이터센터 수용 가능 규모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에서도 업계 수요 여력을 바탕으로 '1만 장+α'를 추가 확보하는 것을 요구했으나, 기존 정부안대로 집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 네이버, 카카오, 통신 3사 등 주요 데이터센터 기업들이 당장 수용할 수 있는 GPU 수량은 2만장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업체는 단일 기업 수준에서 1만장 가까운 GPU 수용이 가능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도 정부의 GPU 1만장 확보 목표를 넘어 추가 물량 확보를 요구했다. 과방위 예산안심사소위에서 국민의힘은 1만5000장, 더불어민주당은 최대 3만장까지 늘릴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1만장까지만 보수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으로 굳힌 상태다.
김경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공지능기반정책관은 “엔비디아로부터 원하는 물량을 모두 수급받을 수 있느냐, 그리고 그것을 국내에 올해안에 설치해서 안착시킬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 포인트”라며 “GPU 1만장을 확보하더라도 단일 업체에 턴키로 맡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2~3개 업체가 분산 운영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GPU 물량 확대 필요성에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실제 구매·설치·운영까지 지체 없이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GPU를 운영하기 위해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대규모 전력 인프라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와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3만장 확보 방안에 대해선 현실성이 낮다고 지적한다. GPU는 재고 판매가 아닌 주문 생산 방식이라 단기간에 대량 조달이 어렵고, 데이터센터 수용 여건만으로 실제 운영 가능 물량을 단정 짓기도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김태훈 서강대 교수는 “GPU는 주문 이후 생산되는 구조라 글로벌 수요가 몰려 있는 상황에서는 빠른 납품이 어렵다”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엔비디아 주력 제품인 B200을 일부 구매한 곳에서도 구입까지 8개월 이상 소요됐다”고 말했다.
국산 GPU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엔비디아 대신 AMD 등 대체 칩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성능과 호환성, 생태계 측면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민간 사업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CSP(클라우드서비스제공자)에 적정 수준의 서비스 운영 비용을 보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추경 예산을 확보해 놓은 상황에서 참여 사업자가 없으면 최악의 경우 사업이 유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CSP 입장에서는 (GPU를 구축하는) 데이터센터 상면에 대한 임대료 수익 기회 비용이 존재하며 전기요금, 유지보수 비용 등도 감당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현물 출자 등 비용 보전 수준을 적정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