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과도 대 끊길라” 전공의 배상 판결에…의료계 공분

2025-02-13

데이트 폭력으로 머리를 다친 환자가 병원에서 사망하자 법원이 치료를 담당한 전공의에게 책임을 물은 것을 두고 의사사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작년 2월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복귀 움직임이 여전히 크게 나타나고 있지 않은 가운데 필수의료 분야 기피현상을 부추길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13일 낸 입장문에서 "의료 소송 판례들을 살펴볼 때 중증·응급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최전선에 있던 전공의들은 높은 의료사고 위험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며 "이번 판결처럼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민사적 책임을 지게 되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주장했다.

젊은 의학도들이 의료사고 위험으로부터 적절히 보호받을 수 없는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중증·응급 의료 분야에서 자발적으로 수련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점차 어려워질 것이란 지적이다.

그러면서 "전공의 수련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강조하는 정부가 전공의에게 무거운 배상이 온전히 전가되는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중증·응급 의료에 종사하는 전문의·전공의들을 보호할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사건은 2017년 10월 데이트 폭력으로 머리를 심하게 다쳐 응급실로 실려 온 환자가 중심정맥관을 삽입하는 시술을 받던 중 사망한 것이 발단이다. 마취통증의학과 1년 차 전공의였던 A씨는 경막외출혈 등 상해로 긴급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판단 아래 중심정맥관 삽입술을 시행하던 중 동맥을 관통하는 의료사고를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광주고법은 최근 A씨와 그가 소속됐던 전남대병원에 공동의 불법행위 책임이 있다고 보고 손해 배상금 약 4억 4000만 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해당 시술 자체는 흔한 의료행위이지만 대상 신체 부위가 자칫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쇄골 근처였기 때문에 A씨가 최선의 주의 의무를 기울여야 했다는 이유다.

또 중심정맥관 삽입 과정에서 이번 사례처럼 주위 동맥을 1∼2㎜ 크기로 관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점을 들어 A씨와 병원이 데이트폭력 가해자와 함께 유가족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번 판결에 대해 의료계는 "재판부가 데이트 폭행 사망 사건의 가해자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의사를 공범으로 만들었다"며 공분하고 있다. 환자가 사망한 점은 애통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고의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처벌이 과하다는 것이다.

앞서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는 전일(12일) 성명을 내고 "의사는 신이 아니다. 뇌출혈 환자는 제때 제대로 치료받지 않으면 사망의 가능성이 높은 중증 환자이며,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1차적인 원인을 제공한 자는 당연히 폭력 가해자"라고 질타했다. 또 "시급을 다투는 응급상황에서 위중한 환자를 살리려는 선한 의도를 가진 의사를 고의적인 폭력 가해자와 동일한 범죄자로 취급했다"며 "이번 판결은 이대목동 소아중환자실 사건 판결에 이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대가 끊긴 것처럼 필수 중증 응급 의료계의 씨를 말리는 엄청난 의료대란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앞서 대한응급의학회도 "이번 판결로 응급의료 수행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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