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정년연장, 디지털 시대 맞게 유연해져야

2025-11-26

출범 6개월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 진단

이재명 정부 출범 6개월이 됐다. 그동안 국회와 정부, 시장에 많은 일이 있었고 지금도 변화의 속도에 어지럽다. 노동 정책의 세 가지 핵심은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 그리고 노동조합법 개정(소위 노란봉투법)이다. 앞선 두 가지는 노동력 투입 즉 성장에 관련되며, 마지막은 분배를 조절한다. 노조법은 지난 8월 24일 국회를 통과해 9월 9일 공포됐고, 정년연장은 연내 입법을 예고하고 있으며, 근로시간은 제도개혁보다 관행 개선에 초점을 두는 양상이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지향하는 정부의 의도에 맞게 ‘3종개혁’이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근로시간은 법률 개입 최소화와 선택권 확대가 바람직한 방향

정년연장은 산업 특성과 임금체계 등 고려해 노사가 선택하게

노동쟁의 대상 확대로 노사 교섭 난이도와 분쟁 가능성 높아져

노사관계의 사법화로 부작용 우려…노·사·정 사회적 대화 절실

‘52시간’체제, 근로시간 단축효과 미미

근로시간 단축에는 정부가 신중하다. 법정 근로시간 단축이 초래할 영향과 저항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 4.5일(주 36시간)을 제도화해도 연간 근로시간 단축의 기대값인 208시간(4시간×52주)에 못 미칠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은 (특별)연장근로 등을 이용해 노동 투입을 유지할 것이며, 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줄어든 중소기업 종사자들은 멀티잡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최근 근로시간 제도개편의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지난 2018년 국회는 근로기준법 제2조 7호(“1주”란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를 창설해 주당 총근로시간에서 휴일근로를 배제했고 소위 ‘52시간’ 체제를 완성했다. 하지만 새로운 체제가 순차 적용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줄어든 연간 총근로시간은 92시간에 불과했다. 주당 최대 16시간이 제도에서 사라졌음에도 줄어든 근로시간은 연평균 23시간에 불과한 셈이다. 사실 2018년 법 개정에서 52시간 제한보다 영향이 컸던 건 특례업종 축소였다. 금융보험, 영화제작, 통신, 교육연구 및 조사, 광고 등 업종에 대한 연장근로 특례가 사라졌다. 해당 분야에서 만연하던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숙원이었지만, 이 또한 기대한 만큼 근로시간을 줄이지 못했다.

중요한 단서는 특별연장근로 시행규칙 개정이다. 52시간 제한과 특례 축소의 법 개정 직후인 2019년 일본과의 무역분쟁이 발생했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의 수입이 막혀 긴급 공급대책이 필요했으나 근로시간이 걸림돌이었다. 결국 정부는 2020년 1월 31일,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자연재해와 재난 등의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었던 특별연장근로 사유를 업무량 증가, 소부장 연구개발 등으로 대폭 확대했다. 2017년 10여 건에 불과하던 인가 건수는 2020년 4000건이 넘었고, 2022년엔 1만 건에 근접했다. 근로시간 상한을 법으로 규율하면서도 정부의 재량으로 규제를 풀어준 셈이다. 지난 반도체특별법 논의 과정에서도 국회는 특별연장근로 활용을 주문했다. 역대급 초강력 국회가 핵심 근로기준인 근로시간을 법으로 규율하는 대신, 정부의 행정 판단에 위임한 것은 ‘아이러니’다. 이 같은 편법적 근로시간 관리는 모두 제도의 경직성 때문이다.

지금 노동시장은 ‘비스포크’ 시대

생산의 디지털화와 인공지능(AI) 활용, MZ세대의 주류화, 근로자 선호와 취향의 다양화 등 노동시장이 빠르게 변하고 있음에도 우리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 규율은 여전히 획일적 공장법 체제에 머물러 있다. 산업화 시대가 대량생산에 기반한 표준화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개인 취향과 선택이 다양화하고 삶의 패턴이 개별화하는 ‘비스포크 시대’다. 일하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성과가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 직무가 증가하면서 근로시간의 획일적 통제와 규율은 근로시간 단축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대부분 국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향은 법률 개입의 최소화와 선택권 확대다. 노사 합의로 근로시간을 규율하도록 함으로써 빠르게 변하는 시장과 일하는 방식 혁신에 대응하고자 한다. 법은 근로자의 건강과 생활세계를 보호하기 위한 휴게 규제와 휴일 확대에 초점을 둔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은 근로일간 11시간, 주 1회 이상 중단없는 24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해야 한다. 우리도 근로일간 휴게를 의무화하고 야간근로에 대한 정의와 규율을 통해 근로자 건강을 보호하되 각종 유연근로를 ‘연장근로 제도’로 통합하고 그 단위 기간을 확장·다양화(월, 년 등)하는 방법으로 근로시간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다.

연구개발·교육 산업은 아예 정년 폐지를

‘정년연장’도 어려운 문제다. 정부·여당은 연내 입법을 추진하고 있으나 노사의 이해가 첨예해 합의가 쉽지 않다. 하지만 노동시장 제도, 사회안전망 수준 등을 고려할 때 고용연장은 불가피하다. 고령자고용법상 정년은 60세이나, 국민연금 수급 연령은 1969년생부터 65세다. 제도적 소득 공백이 생기는 셈이다. 연금을 받아도 소득대체 수준이 낮아 또한 문제다. 현재 연금의 소득대체율 목표는 40%이나, 실질대체율은 20년 가입자의 경우 23% 수준이며, 노인빈곤율은 38%로 OECD 평균의 약 3배다. 이러한 상황이라 60세 이후에도 노동은 불가피하다. 우리나라 노동자 은퇴 연령이 72.3세(2022년)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늦은 이유다. 노동 수요 차원에서도 생산연령인구 축소로 고령자의 숙련과 경험 활용이 불가피하다.

고용 연장은 필요하지만 2013년 60세 정년 입법의 경우처럼 강행 형태의 보편적 제도화는 부작용이 크다. 근로조건 변경 없이 정년만 연장하면 교섭력 있는 일부 유노조 대기업을 제외하고 오히려 주된 직장에서의 퇴직이 빨라진다. 국회 보고서에 따르면 정년 제도화에도 불구하고 주된 직장 은퇴 연령은 2012년 53세에서 2022년 49.3세로 3.7세 줄었다. 대기업조차 비용 조절을 위해 중장년층 희망퇴직을 유도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조기퇴직 없이 고용을 연장하는 방법 모색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 특성, 사업 유형, 인사관리 전략, 임금체계 등을 고려해 노사가 최적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옵션이 다양해야 고용의 실질적 연장을 기대할 수 있다. 예컨대, 인사·임금 제도가 연공에 기반하고, 장기고용으로 고령자 비중이 큰 사업체에서는 ‘정년 후 재고용’의 방식이 합리적이며, 임금체계가 직무급·성과급 등으로 전환된 업종에서는 ‘정년연장’을 선택해도 문제 될 일이 없다. 연령과 생산성의 관계가 낮은 연구개발·교육 등의 산업에서는 정년제도를 폐지하는 것도 고려해 볼 일이다. 이상은 일본의 경험이지만, 고령화와 생산연령인구 감소가 미증유의 도전임을 고려할 때, 앞서 대응한 사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이다.

하도급 교섭권 확대 영향 크지 않을 듯

마지막은 입법 후에도 논란이 많은 노동조합법이다. 노란봉투법은 ‘불법파업’에 대한 과도한 손배·가압류가 파업 참가자의 생활과 생계, 나아가 생존권을 위협함에 따라 배상의 산정 방법과 수준을 제한하자는 취지였다. 그 목적에 동의한다. 무엇보다 과거에 기업이 노조의 파업권을 제약하기 위해 정당한 쟁의행위에까지 손배·가압류를 청구함으로써 ‘노동 3권’의 향유를 훼방했던 점을 고려하면 제도개선의 필요를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번 개정 노동조합법은 애초 노란봉투에 넣고자 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규정하고(제2조제2호),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등 다양한 비임금노무제공자의 ‘노동3권’을 보장했으며(제2조제4호 라목 삭제), 노동쟁의 대상에 ‘근로자의 지위 및 근로조건의 결정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를 추가했다(제2조제5호). 손해배상 책임과 관련해서는 노조내 지위,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등에 따라 책임 비율을 정하도록 했고, 신원보증인의 배상책임은 삭제했다.

2조 2호와 4호 개정으로 도급업체 및 특고종사자의 교섭권 확대와 근로조건 개선을 기대하지만, 논란에 비해 그 영향과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조선·철강 등의 산업과 택배업 등을 제외하고 협력업체와 특고 부문 노조 조직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사용자 범위 확대의 영향이 큰 분야는 공공부문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많은 공공기관이 비정규직의 고용안정화 방법으로 자회사 전환을 선택했고 현재 100여 개 기관 자회사 대부분에 노조가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경우 정부 지침에 따라 자회사와의 단체교섭에 응할 수밖에 없어 교섭의무를 둘러싼 법률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오히려 다툼은 2조5호의 쟁의권 확대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높다. 쟁의대상 확대로 단체교섭 의제가 사업상 의사결정을 포괄함에 따라 교섭의 난이도와 분쟁 확률이 높아졌다. 기업별 교섭구조에서의 단체교섭 의제 확대로 대기업 노동조합의 배타적 이익 추구 가능성이 커졌으며 이는 기업 간 근로조건 격차를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원청기업의 사용자가 협력업체 노동조합과 교섭하는 경우, 원청노조와 하청노조의 이익 충돌을 배제하기 어려워 2조2호의 개정만으로 하청업체의 근로조건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개정 노조법 관련 또 하나의 우려는 ‘노사관계 사법화’다. 법원이 노사관계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노사 당사자의 자주적 해결 노력을 냉각시킬 가능성이 높으며, 법원에 대한 의존이 심화(마약 효과)하여 자율적 교섭 역량과 분쟁 해결 능력이 약화할 것이다. 법 적용을 앞둔 시점에서 제도의 불확실성을 완화하고 안정적 교섭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한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가 절실한 이유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