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390%' 경악할 물가상승, 한때 한국 얘기였다 [센서스 100년]

2025-09-10

광복 80년 센서스 100년 “숫자는 기억한다”

한국에서 통계 조사를 시작한 건 1925년 인구총조사(센서스)부터다. 한국의 센서스에는 100년의 역사가 담겼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총조사는 1949년에 실시했다. 한국통계진흥원이 지난 2008년 발간한 책 『대한민국을 즐겨라-통계로 본 한국 60년』과 통계청 통계 등을 통해 광복 이후 80년간 한국의 발전사를 조명해본다.

〈목차〉

① GDP는 5.3만배 껑충, 문맹률은 78%→0%…광복 이후 대한민국

② "불임시술하면 승진" "셋째 휴직 불가"…'저출생 부메랑' 된 장면

③1951년 한해 390% 오른 '살인물가'...1982년 이후 두 자릿수 상승률 사라졌다

해방 이후 서민 생활에 가장 큰 어려움은 살인적인 물가였다. 1945~1952년 사이 물가 약 330배 급등했다. 1951년 한 해만 390%가 뛰었다. 현금을 들고 있었다면 1년 만에 가만히 앉아서 가치가 4분의 1토막 났다는 얘기다.

6·25 전쟁으로 막대한 재정 지출이 발생하면서 통화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에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물가는 급등했다. 정부는 이를 통제하고 전시 혼란 속에서 축적된 검은돈, 사재기 자금을 흡수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화폐단위를 원(圓)에서 환(圜)으로 바꾸면서 100대1 교환 비율을 적용했다.

하지만 화폐개혁의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가 돈을 계속 찍어낸 데다 사람들의 몸에 밴 거래 단위가 잘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100원이던 물건은 화폐개혁 후 1환에 거래가 돼야 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값이 올라 예전과 같은 100환이 돼 버렸다. 경제사 학계에선 당시 화폐개혁이 성공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억제 수단이 되지 못한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1953년 화폐개혁 이후에도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자 정부는 1962년 화폐개혁을 재차 시도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1953년에서 1963년까지 한국의 통화량은 연평균 약 38%, 도매물가지수는 약 21% 상승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는 경제 안정과 개발 독려를 위해 화폐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교환 비율은 10환당 1원. 1953년 화폐개혁과 달리 상대적으로 혼란이 적었고, 신뢰 회복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역시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는 없었다. 1950년대 후반 한 자릿수였던 물가상승률은 1962년 화폐개혁 이듬해부터 2년 연속 20%대로 갑자기 뛰기도 했다. 두 차례 화폐개혁은 물가만 1000배 끌어올린 셈이다.

1970년대 이후 10% 수준을 유지하던 물가상승률은 두 차례 오일쇼크 때 다시 25% 안팎으로 뛰었다. 물가가 안정기로 접어든 것은 전두환 정부 들어서다. 전두환 대통령은 물가 안정을 어떤 경제정책보다 우선했다. 도로·항만과 같은 사회간접자본 확충도 미뤘고, 농어촌 지원도 줄였다.

여기다 전 세계적인 3저(저유가·저달러·저금리) 호황까지 겹쳤다. 안팎의 호재 덕분에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은 1981년 21.4% 이후 한국의 역사에서 사라졌다. 최근에는 다소 등락은 있지만, 2022년의 고물가(5.1%)에서 지난해 평균 2.3% 수준으로 낮아졌고, 올해 하반기에는 1%대 상승률이 이어지면 물가가 안정화하는 추세다.

통계청이 매월 집계하는 소비자 물가지수를 통해 봐도 한국의 물가 변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2020년 물가를 100으로 볼 때 1965년 1월은 2.49에 불과하지만, 지난달 물가지수는 116.45에 이른다. 60년 새 물가가 약 47배로 뛴 것이다. 1965년에 1만원으로 살 수 있었던 품목을 올해 사려면 48만원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품목별로는 가격 상승 폭에 차이가 있다. 1948년 1근(600g)에 307원 하던 소고기값은 올 초 기준 7만4166원이다. 이 기간 가격이 242배로 뛰었다. 돼지고기 가격은 285원에서 60배인 1만7124원이 됐다. 자장면 한 그릇도 35원에서 6756원으로 193배가 됐다.

이에 비하면 쌀·달걀 등 값은 더디게 올랐다. 1948년 달걀 10구에 248원이었는데, 올해는 3565원이다. 쌀 8㎏ 가격도 1948년 1840원에서 12배(2만2714원)에 그친다. 시내버스·지하철 요금은 상대적으로 더 많이 올랐다. 1948년 달걀 1개(24.8원)면 버스(4.5원)를 5번 넘게 탈 수 있었는데, 올해 평균 시내버스요금은 1425원으로 달걀 1개 값으로 버스를 4번밖에 못 탄다.

인플레이션의 최대 피해자는 늘 서민이다.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도 물가를 따라가기 힘들다. 은행 돈을 많이 갖다 쓴 기업은 인플레이션 혜택을 봤다. 1950년대와 60년대 인플레이션으로 서민의 부가 기업으로 강제 이전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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