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케데헌'이 보여준 '넥스트 K'의 도래

2025-09-11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글로벌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 이 놀라운 성공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지만, '케데헌'의 성공 방정식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제시한 새로운 K콘텐츠 미래 성장 전략, '넥스트 K'의 실체를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사례다. 넥스트 K 전략의 핵심은 이제 한국에서, 한국에 의해서 만들어진 콘텐츠를 넘어, 문화적·지리적 경계를 초월한 글로벌 스탠더드로 도약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이는 더 이상 'K'라는 라벨에 안주하지 않고, 콘텐츠 그 자체의 보편성과 창의성으로 세계를 설득해야 한다는 방향성도 포함한다.

'케데헌'은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K팝이라는 강력한 글로벌 음악 산업의 동력에 애니메이션이라는 시각 언어가 결합하며,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지식재산(IP)으로 진화했다. 무대 위의 역동성과 팬덤이 함께 하는 에너지가 애니메이션의 상상력, 서사 구조와 결합해 장르 융합의 실험을 성공적으로 완성했다.

콘텐츠 소비 흐름 또한 인상적이다. 작품 OST는 공개 직후 빌보드,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차트를 석권했고, 글로벌 아티스트와 팬들의 노래 안무 커버 영상이 이어지며 콘텐츠의 생명력을 확장시켰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반 콘텐츠임에도 영화관에서 싱어롱(sing-along) 상영이 이뤄졌고, 이는 온라인에서의 소비가 오프라인 체험으로 확장되는 순환 구조가 실현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음원, 영상, 캐릭터, 팬덤 등의 구성요소가 각각 독립된 수익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IP를 중심으로 상호 연동되며 산업 간 부가가치를 함께 키워내는 구조. 이는 콘진원이 넥스트 K 전략을 통해 강조한 'IP 가치사슬 확장'의 실제 구현 사례라 할 수 있다.

K컬처가 글로벌 무대에서 통용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한국적인 요소를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 그 문화적 정서의 세밀한 부분까지 세계인의 감정선에 정교하게 접목할 수 있어야 한다. 케데헌은 한국적 요소를 현대적인 표현으로 재해석하며 이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갓' '호랑이와 까치' 같은 전통 이미지에 한양 성곽길, 지하철과 대중목욕탕, 국밥 등 매우 한국적인 소재들이 서울이라는 현대적 도시 배경 안에 녹아들어, 글로벌 관객에게 친근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전달됐다.

소파를 두고 바닥에 둘러앉아 분식을 먹는 장면은 보는 동안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놀라운 한국적 디테일의 묘사였지만, 고된 일과 후의 야식 시간을 표현하는 이야기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설득된다. 한국 사람만 알 수 있는 매우 한국적인 일상문화의 글로벌 확장이다. 콘텐츠를 통한 공감은 영향력이 크다. '정보기술(IT) 강국' '메모리 반도체 수출 1위국'과 같이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달리, 콘텐츠를 통해 가슴으로 공감된 한국문화는 글로벌 소비자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서, 지워지지 않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처럼 콘텐츠를 통해 일상적인 문화까지 세계 대중의 공감을 얻는 방식이야말로, 진정한 문화 확산이며 콘진원이 지향하는 '초현지화(Hyper-localization)' 전략의 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제작 과정 또한 주목할 만하다. 케데헌은 한국의 문화 자산을 토대로 글로벌 플랫폼, 다국적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글로벌 아티스트들이 협업한 작품이다. 그 구조 안에서 한국계 창작자들이 주요 역할을 맡으며 문화적 정체성을 살리는 동시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협업 구조를 실현했다.

감독 메기 강, 작곡가 이재, 성우 아덴 조 등은 작품의 성공과 함께 주목을 받았고, 이들은 인터뷰를 통해 모두 한국문화를 뿌리로 한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활발히 협업하며 큰 성공을 만든 과정을 이야기했다. 이는 콘텐츠 성공이 더 이상 특정 국가의 제작 역량에만 의존하지 않고, 세계적 창작 자원이 결합해 시너지를 발휘하는 시대가 열렸음을 보여준다.

콘진원은 이러한 넥스트 K의 실현을 보다 폭넓게 뒷받침하기 위해 글로벌 협업 및 해외시장 진출지원 사업을 적극 확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출지원을 넘어, 국내외 창작자와 산업 관계자들이 실제로 만나 교류하고 협업을 설계할 수 있는 플랫폼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현재 서울 한남동에서는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 글로벌 뮤직마켓 '뮤콘(MU:CON) 2025'이 열리고 있다. 올해 14회째를 맞은 이 행사는 K팝을 포함한 국내 음악 산업이 국경을 넘는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산업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흐름을 실질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행사기간 동안 국내외 46개팀 뮤지션이 쇼케이스에 참여해 해외 시장진출 및 글로벌 협업 기회를 모색한다.

첫날 SM엔터테인먼트 최진석 이사의 키노트에서는 K팝의 글로벌 공동 프로젝트 경험과 미래 전략이 공유됐고, '아시아 음악시장 전망' 세션에서는 초국경적 협업이 더 이상 문화적 실험이 아닌 구체적인 산업 전략임을 강조하는 논의가 이어졌다.

또 12일 'K팝이 IP를 활용하는 방법' 세션에서는 아티스트 세계관을 팬덤을 통해 굿즈, 게임, 메타버스로 확장하는 구조가 소개되고, '글로벌 히트 플레이북' 워크숍에서는 한국·미국·브라질 동시 발매 사례를 중심으로 현지화 전략이 구체적으로 공유될 예정이다. 뮤콘은 넥스트 K 전략이 음악 산업 내에서도 이미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국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차주에 이어지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콘진원의 '국제방송영상마켓 BCWW 2025' 역시 방송영상 분야에서의 글로벌 협업 가능성과 미디어 플랫폼 환경의 변화에 대한 대응 전략을 조망할 기회가 될 것이다. 드라마, 예능, 다큐, 애니메이션 등의 신작이 쇼케이스를 통해 공개되며, 300여 개 국내외 기업 간의 비즈매칭과 전시를 통해 새로운 협업이 구체화될 예정이다. 이는 '넥스트 K-IP'의 발굴과 확산을 위한 실질적인 시장으로 기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는 'Made in Korea'에서 'Made with Korea'로 관점을 전환해야 할 때다. '케데헌'의 성공을 두고 'Made in Korea'가 아니기 때문에 정작 한국에서는 돈을 벌지 못하고, 미국 제작사와 OTT만 수익을 냈다는 불만도 들려온다. 그러나 '케데헌'을 통해서 K팝의 파급력을 다시금 확인했고, 나아가 푸드, 뷰티, 패션, 언어(한국어), 관광, 라이프스타일까지 다양한 'K' 연관산업의 가치까지 그 위상을 높였다. K창작자들의 글로벌 수준 역량 또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는 지금의 '케데헌' 효과가 단순히 관련 기업의 수익을 넘어서, K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국가 전체에 부가가치를 가져오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 근시안적인 수익 계산을 넘어, 더 넓고 긴 안목의 부가가치를 봐야하는 것이다.

'케데헌'의 성공은 단지 하나의 작품 성과가 아니라, 한국 콘텐츠산업이 '함께 만드는 글로벌 문화'로 진화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글로벌 협업과 정교한 현지화 전략, 그리고 장르와 산업의 경계를 넘는 창의적 결합이야말로 K콘텐츠가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갖추는 핵심 열쇠다. 콘진원이 다각적으로 열어가고 있는 글로벌 비즈니스 협력의 장은 이러한 방향성을 실현하기 위한 기반이며, '넥스트 K' 전략은 이제 선언이 아닌 이미 도래한 미래로서 정밀한 실행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유현석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hsyooa@hanmail.com

〈필자〉유현석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은 1992년 LG애드에 입사한 이래, 지난 30년간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에서 전문성과 리더십을 발휘했다. 2022년 9월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원장으로 임명된 이후, 2024년 9월부터 원장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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