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0억원짜리 자기부상열차, 경제성 없어 불안한 재운행

2025-10-29

3년3개월 만에 재개한 인천공항 노선 타 보니

지난 24일 인천 중구 영종도의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1층 도착층. 공항철도 타는 곳을 향해 가다 보니 ‘자기부상열차(Maglev Line)’라는 글자가 적힌 안내판이 보였다. 2층으로 올라간 뒤 계속 안내판을 따라 걸어가니 열차 탑승장이 나왔다. 요금은 무료였고 역무원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운행 시간표를 보니 첫차는 오전 10시 15분, 막차는 오후 4시 40분에 출발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출퇴근 시간대를 제외하고 낮 시간대에만 제한적으로 운행한다는 의미다. 하루에 총 12회 운행, 배차 간격은 35분이었다. 다만 매주 월요일과 추석·설날 당일은 운행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적자 쌓여 멈췄던 자기부상열차

체험용 시설로 변경해 운행 재개

노무현 정부 때 최우선 과제 선정

2016년 ‘세계 2번째 도시형’ 개통

이젠 열차 부품 조달도 쉽지 않아

수출 실적도 전무, 장래는 불투명

낮 12시에 인천공항 1터미널을 출발하는 열차를 탔다. 2량짜리 미니 열차였다. 기관사가 없는 무인 운행이었는데 인천공항 점퍼를 입은 안전요원 한 명이 같이 탔다. 최대 탑승 정원은 186명이지만, 실제로 기자와 함께 탑승한 인원은 스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중간역에서 한 승객이 자전거를 들고 타려고 하자 안전요원이 “자전거는 안 된다”며 제지하는 일도 있었다.

일반 전철보다 소음·진동 적어

자기부상열차는 바퀴가 철로에 닿지 않고 전자석의 힘으로 살짝 떠서 달리는 열차다. 철로와의 마찰이 없는 만큼 소음과 진동이 적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기자가 직접 타보니 열차의 흔들림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일반 열차에 비하면 승차감이 좋은 편이었다.

열차는 일반 전철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인천공항 1터미널에서 종점인 용유역까지 다섯 정거장, 6.1㎞ 구간을 가는 데 약 15분이 걸렸다. 전광판에 표시된 최고 속도는 구간에 따라 시속 37~38㎞였다. 한국형 자기부상열차의 설계 기준 최고 속도(시속 110㎞)와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었다. 일부 구간에선 공항 시설물 보안 때문인지 밖이 보이지 않도록 창문이 뿌옇게 변하기도 했다.

인천 서구에서 친구와 함께 왔다는 정만석(75)씨를 열차 안에서 만났다. 그는 “자기부상열차는 처음 타보는데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고 해서 심심풀이용으로 와봤다. 열차 밖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가을 풍경을 바라보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별한 용무는 없어서 인천공항에서 종점인 용유역까지 갔다가 바로 돌아갈 예정”이라며 “어차피 요금을 내는 것도 아니니 가끔 와서 타볼 것 같다”고 했다.

출퇴근 시간은 운행 안 해

코로나19 이후 멈췄던 인천공항 자기부상열차가 지난 17일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지속적인 운영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2022년 7월 운행을 중단한 지 3년3개월 만이다. 원래 도시철도였던 열차의 법적 지위는 전용 궤도시설로 달라졌다. 도시에서 정기적으로 승객을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이 아니라 관광지 등에서 체험용으로 운영하는 시설물이란 뜻이다. 이렇게 하면 사업자가 출퇴근 시간에 맞춰 열차를 운행할 의무가 없고 자율적으로 운행 시간 등을 정할 수 있다.

인천공항 자기부상열차가 첫 운행을 한 건 2016년 2월이었다. 사업비는 3150억원으로 중앙정부(2174억원, 69%)와 인천시(189억원, 6%), 인천공항공사(787억원, 25%)가 나눠서 부담했다. 여기에 기술개발 연구비 등을 포함하면 총비용은 4500억원 가량이 들어갔다. 개통 이후 열차 운영은 인천공항공사가 맡았다. 당시 개통식에 참석한 최정호 국토교통부 2차관은 “일본 나고야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통한 도시형 자기부상열차”라며 “해외 진출을 위해 다각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축사를 했다.

하지만 개통 이후 이용실적이 워낙 저조한 데다 매년 80억원가량 적자가 쌓이면서 자기부상열차는 ‘애물단지’가 됐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도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당초 예상치(3만6000명)의 11% 수준(4000명)에 그쳤다. 코로나19가 심각했던 2021년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325명까지 급감했다.

주변 개발사업 무산에 직격탄

한국형 자기부상열차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12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대형 연구개발 실용화 사업의 최우선 과제로 선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당시 노 대통령은 직접 회의를 주재하면서 “과학기술이 산업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경제성 평가 기법과 수준을 높여 기술가치 및 기술성과 평가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후 기술 개발에 자신감이 생기자 정부는 2007년 8월 인천공항 인근을 자기부상열차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했다. 당시 인천·대전·대구·광주 등 네 개 광역시가 서로 자기부상열차를 유치하겠다며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영광의 날’은 짧았다. 가장 큰 문제는 턱없이 부족한 승객 수요였다. 한때 인천공항 인근에 계획했던 대형 복합리조트 등 각종 개발사업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자기부상열차도 타격을 받았다. 현재 운행 중인 자기부상열차 노선에는 ‘워터파크’라는 이름의 역이 있지만, 개통 9년이 넘도록 사실상 허허벌판으로 방치돼 있다.

당초 정부는 해외 시장 진출 등을 통해 3조3000억원 넘는 경제적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결국 헛된 희망에 그쳤다. 현재까지 해외 시장 수출 실적은 전혀 없고, 국내 시장에서도 철저히 외면받았다. 한때 자기부상열차 도입을 검토했던 대전은 계획을 철회했고 다른 지역에선 아예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운행 횟수 줄여 인건비 절감

자기부상열차의 재운행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국토부와 인천공항공사는 2021년 전문가 연구 용역을 통해 ‘탄력적 운영으로 비용 절감’이란 결론을 내렸다. 체험용 궤도시설로 바꾼 뒤 운행 횟수를 줄여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을 아끼겠다는 계산이었다. 이렇게 하면 연간 80억원가량인 운영 적자를 50억원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고 봤다. 원래는 하루에 열차 두 대를 교대로 돌렸지만, 재운행 이후에는 한 대만 돌리기로 했다.

2년 전인 2023년 6월 인천시의회에선 자기부상열차의 처리 방향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용유역 주변 마을 주민들은 자기부상열차의 조속한 재운행을 원했지만, 요금 수입은 한 푼도 없이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인천공항공사로선 운행 재개의 부담이 컸다. 기존에 시속 80㎞였던 최고 운행 속도는 재운행 이후 절반 이하(시속 40㎞)로 낮추기로 했다. 여기엔 열차 정비에 필요한 부품을 구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당시 함동근 인천시 철도과장은 “부품 소모가 너무 심하면 자기부상열차를 운영하기가 더 어렵고 결국은 철거해야 한다”며 “어떻게든지 지속적으로 운행하기 위해 궤도시설로 변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재운행에 들어갔지만, 인천공항 자기부상열차의 장래는 밝지 않다. 노선이 제한적이고 인구 밀집 지역이나 주요 관광지 등을 가지 못하니 승객이 적을 수밖에 없고, 승객이 적으니 경제성이 없어 노선을 연장하지 못하는 악순환이다. 원래는 용유역에서 인천공항 서쪽의 국제업무지역까지 연결하는 2단계 노선(9.7㎞), 영종도 전체를 순환하는 3단계 노선(36.4㎞)도 계획했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2단계 노선의 경우 비용 대비 편익 분석(B/C)은 0.11에 그쳤다. 예컨대 사업비로 100억원을 투입하면 사회적으로 돌아오는 편익은 11억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상하이는 초고속 방식 채택…인천·나고야는 중저속 운행

철로 위를 미세하게 떠서 달리는 자기부상열차의 기술적 원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철로 위에서 강력한 초전도 전자석의 밀어내는 힘으로 열차를 직접 띄우는 방식(초전도 반발식)과 ▶철로 아래에서 전자석의 당기는 힘을 발생시키는 방식(상전도 흡인식)이다.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기계연구원에 따르면 상전도 흡인식의 경우 열차 밑에 고리 모양으로 철로를 감싸는 부분이 있다. 고리의 아래쪽에 있는 전자석에서 철로와 달라붙으려는 힘이 발생하면 고리의 위쪽은 철로 위로 뜨게 되는 원리다.

기술적으로 초전도 반발식은 초고속으로만 달릴 수 있고, 상전도 흡인식은 초고속과 중저속이 모두 가능하다. 중국 상하이 푸동국제공항의 자기부상열차는 초고속(최고 시속 430㎞) 상전도 흡인식, 인천공항과 일본 나고야의 자기부상열차는 중저속(최고 시속 100~110㎞) 상전도 흡인식이다.

국내에서 자기부상열차가 첫선을 보인 건 1993년 8월 개막한 대전엑스포였다. 이후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선 2020년 말까지 관람객 체험용으로 자기부상열차를 운행한 뒤 철거했다. 운영비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지만, 노후 장비를 교체할 부품을 구하기 어려웠던 게 결정적 원인으로 꼽힌다.

나고야에선 2005년 아이치 엑스포를 계기로 세계 최초의 도시형 자기부상열차를 개통했다. 현재도 리니모(Linimo)란 이름으로 9개 역(8.9㎞ 구간)을 운행 중이다. 배차 간격은 5~8분, 기본요금은 170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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