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끈적한 혈전에 세균을 달라붙게 해 혈액 속 세균을 제거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항생제 내성 세균까지 제거할 수 있어 패혈증과 같은 치명적인 전신 감염 치료법 개발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강주헌 교수팀은 인공 혈전을 이용한 체외 세균 정화 장치를 개발했다고 26일 밝혔다. 혈액 투석처럼 감염 혈액을 체외로 빼낸 뒤 세균을 인공 혈전에 흡착시켜 제거하고 다시 체내로 넣는 기술이다.
개발된 체외 혈액 정화 장치(eCDTF)는 튜브 중앙에 나선형 구조체가 삽입된 형태다. 나선형 구조체 안쪽에는 인공 혈전이 끼워져 있어, 튜브를 따라 흐르는 혈액 속의 세균이 끈적끈적한 인공 혈전에 달라붙어 제거된다. 인공 혈전은 백혈구 등 세포 성분 없이 혈장 단백질로만 구성돼 있어, 장치 표면에 세균이 잘 달라붙도록 돕는다.
이 체외 혈액 정화 장치는 황색포도상구균, 대장균 등 그람양성·음성균은 물론, 항생제 내성균과 사람 분변 유래 세균까지 90% 이상 제거할 수 있었다.
또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에 감염된 쥐를 대상으로 한 전임상 실험에서도 우수한 효과가 입증됐다. 단 3시간의 체외 순환 치료만으로도 혈중 세균 수와 염증 수치가 현저히 감소했고, 간과 비장 등 주요 장기 내 침투균도 크게 줄었다. 이 정화 치료를 받지 않은 대조군이 7일 이내 모두 사망한 것과 달리, 치료를 한 번 받은 경우 약 33%, 이틀 연속으로 받은 경우 100%의 생존률을 기록했다.
연구팀은 혈액 속 유체 흐름에서 착안해 이 같은 기술을 개발했다. 혈액 속에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다양한 세포가 섞여 있는데, 그중 유연한 적혈구는 혈류 중심부로 몰리고 딱딱하고 작은 혈소판은 혈관 벽 쪽으로 밀려나는 변연화 현상이 발생한다. 연구팀은 세균 역시 혈소판처럼 작고 딱딱해 적혈구에 밀려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최대화할 수 있도록 정화 장치 구조를 설계하고 혈액 속도를 조절했다.
강주헌 교수는 “이번 기술은 항생제를 쓰지 않고도 다양한 병원성 세균을 직접 제거할 수 있어 균혈증, 패혈증과 같은 감염 치료의 접근 방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소 감염 세균이 혈액으로까지 퍼진 균혈증은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전신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패혈증으로 악화할 수 있다.
강 교수는 이어 “기존 장치에서 보고됐던 일부 미해명 세균 제거 현상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돼 관련 기술의 임상 적용 가능성도 한 층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본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보건복지부가 공동주관하는 범부처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자지원사업, 기초연구실지원사업, 산업통상자원부 소재부품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에 4월 26일 온라인 공개됐다.
이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