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인류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영국과 프랑스의 1860년 자유무역 협정이 시작된 이후 전 세계 무역량은 평균 3∼5% 증가했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대량 생산 기술로 생산된 물건은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대량 생산기술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도 무역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즉, 전 지구 대부분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됐다. 이를 기반으로 '더 (more)'라는 단어가 인류 일상의 삶에 보편적 단어로 자리잡게 됐다.
밝음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다는 보편적 진실은 물질적 풍요 시대도 등장했다.
가장 먼저 환경오염이라는 어둠이 등장했다. 다음으로 큰 빈부격차가 발생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 지구 온난화라는 어둠이 순차적으로 등장했다.
환경오염과 빈부격차는 지속적인 인류의 노력으로 일정 수준 해결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산업화로 인해 오염된 현장은 다양한 오염 방지 기술로 개선되고 있다.
빈부격차 문제 역시 단시간에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인식 전환과 국가의 부단한 노력으로 전 세계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아직 실질적으로 해결된 사례보다는 오히려 그로 인한 피해가 더 확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인류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최근 세계기상기구(WMO) 기후변화 보고서는 2024년 이후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지구 온도가 관측됐다고 보고했다. 2015년 파리협정에서 약속된 1.5℃(1.55℃)를 넘어섰고 이산화탄소 농도도 440PPM으로 최고값을 기록했다.
1975년 지구온난화라는 단어가 등장한 후 인류가 지구온난화 억제를 위한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매년 이산화탄소 농도는 증가하고 지구 온도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화석연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신재생에너지발전 기술 개발 등 다양하고 효과적인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이러한 인류의 다양한 시도에도 1.5℃ 이하 유지에 대한 비관적 시각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이런 과학 기술적 접근과 함께 인류의 행동과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등장하고 있다.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공감하면서 제안을 적어본다.
앞서 필자는 '물질적 풍요 시대'라는 단어를 제시했다. 현재 '풍요로움'은 일상을 대표하는 단어다. 이 풍요로움을 아무 부담 없이 즐기기 시작한 시간도 1850년 산업혁명 이후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풍요로움 이전의 삶을 대표하는 단어는 '부족' '적당' '적절' '충분'이라고 생각한다. 수렵시대는 '부족' 농경시대가 되어 '적당'과 '적절'의 시대가 도래했다. 농경 기술과 저장 기술이 더욱 발달하면서 '충분'의 시대가 열렸고 산업화와 함께 '풍요'의 시대가 시작됐다.
부족·적당·적절·충분·풍요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세종대왕과 자음 14개가 연상된다. 14개 자음의 순서를 들여다보면 'ㅂ(ㅅㅇ)ㅈㅊ(ㅋㅌ)ㅍㅎ' 순이다. ㅎ은 웃음을 대표하는 이모티콘이다.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인류는 웃음의 시간을 즐겼다. 하지만 풍요의 결과물인 지구 온난화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
최근 국제 정세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단어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관세'다. 관세전쟁이라는 단어도 나왔다. 관세전쟁이 본격화되면 물가 인상, 실업률 증가 등 발생할 수 있는 상황과 관련해 많은 시나리오가 이야기되고 있다.
그 중, 관세에 따른 세계 무역량 변화와 관련된 연구가 있다. 해당 논문에서 1~2%의 관세 상승으로 세계 무역량의 10~20%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했다. 세계 무역량 감소는 세계 경제의 동반 후퇴라는 어두운 미래가 상상되지만, 기후변화 측면에서는 인류에게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세계 무역량 감소는 각국의 생산 능력을 감소시킬 것이고, 이에 따라 공장 가동률은 낮아질 것이다. 극단적으로, 관세가 상승함에 따라 10배의 생산 능력이 감소할 것이다.
이는 생산 공장의 가동률 저하와 이산화탄소 감소로 연계될 것이다. 물질 풍요의 시대는 끝나고, 충족, 계속하여 적당의 시대가 다시 도래할 것이다.
한글은 하늘, 땅, 인간을 고려하며 창조된 과학적 성과물이라고 한다. 앞서 이야기 한 대로 자음 순서를 살펴보면 'ㅈㅊㅍ'이다.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풍요로움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인류의 시간은 흘러왔다. 이제는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한 과학기술의 노력과 더불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인류의 인식 전환이 있어야 한다.
과학적 결과물인 한글의 'ㅈㅊㅍ'을 사용해 온 대한민국은, 일상과 사고의 변화를 위해 'ㅍㅊㅈ 시대'가 열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내재돼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수출이 대한민국 경제의 40%를 차지한다.
관세로 인한 세계 교역량이 감소하더라도 'ㅍㅊㅈ' 개념이 포함된 산업을 중심으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며, 나아가 신산업으로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로의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국가의 미래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후변화, 지구 온난화로 지구 곳곳에서 기상·자연재해를 겪고 있는 지구를 위해 'ㅈㅊㅍ 시대'를 'ㅍㅊㅈ 시대'로 전환하는 과학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성장의 틀을 수립해 보자.
코로나19로 세계의 공장인 중국 경제가 위축돼 우리가 미세먼지에서 잠시 해방된 경험이 있다. 성장이 인류의 풍요로움을 만들지만 기후 위기도 만들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한글을 바탕으로 한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상협 국가녹색기술연구소장
〈필자〉국가녹색기술연구소(NIGT)를 이끄는 소장으로서 데이터에 기반한 탄소중립 기술을 선별하고 국제협력 연계를 활성화하는 전략수립 기관으로 성장하는데 힘쓰고 있다. 이 소장은 현재 과기정통부 기후·환경연구개발사업 추진위원회 위원, 서울시 은평구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환경공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근무하며 기후환경연구소 물자원순환연구단장을 거쳐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 에너지환경기술단장을 역임했다. 152편 논문과 122건 특허를 보유했다.
환경부 장관 표장 2회, 환경기술 우수상, 미래창조과학부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후정책유공자 표창, 환경산업기술원 20주년 우수기술 50선을 수상했다.
2025년 과학·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기후법 제정 등 대한민국 탄소중립 기술개발 전략 틀을 구축하고 기관 운영을 혁신해 정부의 탄소중립 녹색기술 정책 개발과 국제 협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과학기술훈장 웅비장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