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영토팽창주의

2025-01-09

한 나라의 영토를 빼앗는 행위는 국제법으로 금지돼 있다. 시작은 1648년 유럽의 30년 종교전쟁 후 체결된 웨스트팔리아 조약이다. 주권국가를 유일한 행위자로 인정한 이 조약의 토대 위에 근대 국제질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자본주의 산업화가 진행되며 근대 국민국가는 영토 확장이라는 원시적 욕구를 향해 질주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을 지배한 우승열패·약육강식 논리에 따라 영국·독일·프랑스가 해외 영토 확장에 나선 결과는 두 차례 세계대전의 잿더미였다. 조선 역시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아야 했다. 그러니 유엔헌장의 영토 불가침 조항은 인류가 3세기에 걸쳐 겪은 희생 위에 만든 결과물이다.

20세기 후반을 거치며 죽은 줄 알았던 제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영토 불가침 원칙이 깨졌고, 미국 대통령에 재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마저 이 대열에 동참할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는 지난 7일 덴마크령 그린란드, 파나마운하를 확보하기 위해 군사력이든 경제력이든 힘을 사용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했다.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고, 멕시코만도 아메리카만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했다. 지하자원과 통항권 등 경제적 이익을 구실로 삼은 안보 논리를 내세웠다.

트럼프는 1기 때 이민배척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긴 했어도 영토팽창주의는 진지하게 언급하진 않았다. 그가 문제의 발언 전날 아들을 그린란드에 보낸 걸 보면 빈말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해외 전쟁 불개입 등 고립주의 외교 노선과 배치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고립주의 기원인 19세기 초 먼로 독트린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미국의 배타적 영향권을 강조하며 유럽에 불간섭을 요구한 것이었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를 결합해 주변 지역에 대한 배타적 영향권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패권국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보호무역과 영토 팽창에 관심을 갖는 건 전 세계에 나쁜 신호를 준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정당화되고, 중국이 대만을 점령해도 된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국제관계는 본래 무정부 상태 성격을 갖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작동한 지난 80년은 인류사에서 예외적인 시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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