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28일 유동성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 양국 사업을 통합한 일종의 비상 계획인 ‘컨틴전시 플랜’을 구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롯데의 사업권을 유동화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롯데그룹 계열사들은 이날 서울 여의도에서 기관투자가 대상 기업설명회(IR)를 열어 자산 유동화를 골자로 한 재무 건전성 강화 방안을 설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유동성 부족 사태가 확산될 경우 총 3단계(Tier)별로 대응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도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대책이 공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주요 기업의 상황이기 때문에 대통령실에서도 수시로 보고 받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위기가 가시화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1단계는 총 15조 4000억 원에 달하는 보유 예금을 활용하는 것이다. 롯데케미칼(011170)은 4조 원, 롯데물산 등이 2조 7000억 원, 롯데쇼핑(023530) 2조 5000억 원, 롯데지주(004990)와 롯데캐피탈이 각각 1조 9000억 원을 당장 투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위기가 깊어지면 그룹은 2단계로 롯데지주와 호텔롯데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매각해 신규 투자 자금을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롯데그룹의 계열사 지분 가치는 단순 합산으로만 37조 5000억 원이다. 롯데그룹은 SK그룹 등 다른 그룹과 달리 그동안 외부 기업이나 투자자에게 지분을 매각하는 것을 자제해왔다. 이 때문에 일부 지분을 내놓더라도 계열사 경영권은 흔들리지 않으면서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는 게 그룹의 판단이다.
롯데지주는 롯데케미칼(25.3%)을 제외하면 주요 자회사 지분을 최소 40% 이상 보유하고 있다. 롯데웰푸드와 롯데쇼핑·롯데케미칼 역시 각각 인도식품 자회사인 하브모어(100%), 롯데컬처웍스(86.4%), 유니클로코리아(49.0%),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020150)(53.3%), 롯데바이오로직스 미국법인(100%)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해외 계열사의 경우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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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을 추진해온 호텔롯데 역시 롯데지주(11.1%)를 포함해 롯데물산(32.8%), 롯데캐피탈(32.6%), 롯데렌탈(37.8%), 롯데알미늄(38.2%)의 주요 주주다. 이미 롯데렌탈은 경영권 매각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롯데캐피탈 역시 시장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후보다. 다만 경영권 매각이 아닌 소수 지분 매각은 대형 투자자의 구미를 당기기에는 부족할 수도 있다고 투자 업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롯데그룹이 최후의 보루로 남겨둔 3단계 방안은 56조 원에 달하는 국내 부동산 자산을 비롯해 일본 계열사의 사업권을 유동화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롯데의 사업권 중에서 유동화 가치가 높은 자산들이 있다”면서 “3단계까지 갈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한 계획”이라고 말했다.
롯데의 부동산 자산은 가장 규모가 크지만 다른 자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른 시일 내에 매각이 쉽지 않다는 면에서 당장 유동화하기에는 어렵다는 그룹의 고민이 담겨 있다. 실제로 롯데쇼핑은 지난해부터 자체 보유한 점포나 임차 점포 10곳 이상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매각이 성사되거나 속도를 내는 곳은 없는 상황이다.
코스피 상장사인 롯데리츠에 부동산을 일단 넘겨 단기간 현금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호텔인 L7강남을 넘기자마자 주가가 하락하는 등 롯데그룹 자산 위주 편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미국과 독일 등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지적재산권이나 물류 허가권, 혹은 일정한 수입이 예상되는 항공기 금융이나 선박 금융을 통해 유동화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반면 일본의 경우 이 같은 방식의 유동화가 상대적으로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적용할 만한 자산이 많다는 게 롯데그룹의 판단이다. 이밖에 롯데그룹은 국내 대기업 중 가장 적극적으로 금리가 낮은 일본 금융기관의 자금을 활용했기 때문에 당장 불씨를 끄기는 어렵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