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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지으려던 신생 기업들이 최근 잇따라 공장 구축 계획을 철회하고 나섰다. 기술 경쟁력 확보 어려움에, 트럼프 행정부의 친환경 전기차 지원 정책 축소가 더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노르웨이 배터리 생산업체 프레이어는 조지아주에 26억달러를 들여 짓기로 한 공장 투자 계획을 최근 철회하고 공장 부지 매각을 발표했다. 이 회사는 2026년부터 전기차용과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를 양산한다는 목표로 34기가와트시(GWh) 규모 공장 건설을 추진해왔다.
미국 전기차 배터리 개발 스타트업 코레파워 역시 미국 애리조나주에 계획했던 리튬이온 배터리 공장 건설을 최근 취소했다. 또 뉴욕에 기반을 둔 리튬이온 배터리 스타트업 iM3NY는 지난달 파산 신청을 하면서 미국 내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려던 계획이 무산됐다.
이들 프로젝트 취소는 모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나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임 바이든 행정부에서 제공하던 청정 에너지 기술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보조금과 대출 요청에 대한 자금 집행 여부가 불투명해져서다. 해당 기업들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세액공제 혜택이나 미국 에너지부(DOE)의 대출 지원에 자금 조달의 상당 부분을 의지하고 있었던 만큼 지원 계획이 철회되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프레이어는 노르웨이에서 설립됐지만 IRA 세액 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미국 조지아주 프로젝트에 집중해왔다. 코레파워는 DOE로부터 8억5000만달러 규모 대출에 대한 조건부 약정을 받았다. iM3NY 역시 파산하기 전 DOE에 대출을 신청했다.
배터리 양산 기술 경쟁력 부족과 가격 경쟁력이 높은 중국산 배터리와 경쟁, 전기차 시장 둔화에 따른 자금 조달 어려움 등도 사업 철회의 배경으로 꼽힌다.
이에 앞서 유럽 배터리 독립 상징이었던 노스볼트도 경영난으로 파산 보호를 신청하는 등 독자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려던 후발주자들의 시도는 잇따라 벽에 부딪히는 모습이다.
배터리 업계 구조조정으로 상위권 업체 중심으로 쏠림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미국의 대중국 규제와 고관세 정책은 현지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구축한 국내 배터리 기업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미국 내에서 전기차 배터리 대량 생산이 가능한 기업은 국내 배터리 3사와 일본 파나소닉 정도가 꼽힌다. 이중 LG에너지솔루션이 가장 많은 8곳의 공장을 짓거나 가동 중이다. 실제 완성차 기업들이 높은 관세가 붙는 중국산 배터리를 대체하기 위해 미국 현지에서 배터리 생산이 가능한 업체를 물색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볼보가 기존 중국 CATL에서 공급받는 EX90용 배터리 대체 공급사를 찾는다는 소식이 나오자 SK온과 LG에너지솔루션이 잠재 후보로 떠오른 사례가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관세 정책 등으로 미국 내 현지 배터리 생산 거점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미국 내에서 전기차 배터리 대량 생산이 가능한 기업은 소수의 제조사 뿐”이라면서 “선제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입한 국내 배터리 제조사의 생산능력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정현정 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