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탈리아 가정의 냉장고에는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치즈가 있다”는 말이 있다. 12세기 이탈리아 북부 수도원에서 만들기 시작한 이 크고 딱딱한 치즈는 특유의 감칠맛으로 이탈리아 요리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감을 자랑한다. 이탈리아식 샐러드와 파스타에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간다.
오랜 역사만큼 세계에서 가장 비싼 치즈로도 명성이 높다. 자동차 휠 크기의 40㎏짜리 치즈 한덩어리가 100만원을 호가한다. 만드는 방법도 수고롭다. 어떤 인공첨가물도 넣지 않고 오로지 풀을 먹인 소의 우유로만 만든다.
모든 제조 과정은 수작업이다. 기본 1년을 숙성해야 출하된다. 공장에서 쏟아지는 가공치즈에 익숙한 요즘 사람 눈에는 참 낯선 치즈다.
나는 이 치즈를 보면서 동양의 두부를 떠올렸다. 동양은 몬순 때문에 많은 비가 쏟아진다. 탄수화물을 제공하는 벼는 잘 자라지만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는 가축을 기르기는 쉽지 않은 조건이다. 그래서 동양에서 우유와 고기를 대신해 선택한 것이 콩이었다.
두부의 비범함은 탄생 설화에서도 확인된다.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 유안이라는 사람이 신선이 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해 만든 결과물이 두부라는 것이다. 설화처럼 두부는 현대인을 신선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지만 건강을 선물한다.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한 두부는 고단백 저칼로리 음식이다. 21세기 인류의 화두인 다이어트에 적합하다는 뜻이다. 치즈보다 더 건강하고 가격도 더 저렴하다. 실제 두부는 고지혈증 같은 성인병 치료나 예방을 위해 권장된다. 특히 두부는 육류를 멀리하는 채식주의자들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식이다.
채식이 트렌드를 넘어 식문화로 정착 중인 서양에서도 최근 들어 두부가 어느 때보다 각광을 받고 있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동양의 식재료인 두부를 새롭게 해석한 요리가 쏟아진다.
미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인도네시아 콩 발효식품인 ‘템페’도 그중 하나다. 템페는 콩으로 만들었는데도 버섯과 견과류 맛이 날 뿐 아니라 채식주의자에게 부족한 비타민B12 등 다양한 영양분을 포함하고 있다.
두부의 인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두부마요네즈·두부떡갈비·두부애플파이처럼 두부를 이용해 육류나 달걀을 대체할 수 있는 건강 레시피가 꼬리를 문다. 동영상을 따라 만들어보면 전통적 마요네즈 등과 달리 맛이 산뜻하다. 육류나 우유가 주는 포만감은 부족하지만 먹고 나면 뭔가 건강한 뿌듯함이 느껴진다. 두부김밥·두부면처럼 두부로 탄수화물을 대체하기도 한다.
2025년은 뱀의 해다. 올해 뱀처럼 영리하게 먹거리를 고른다면 냉장고에 가장 먼저 쟁여둬야 할 식재료는 두부가 아닐까?
권은중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