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제는 중국 바둑을 대표하는 프로 기사다. 1997년생으로 5살 때 처음 바둑을 시작해 2015년 세계대회 ‘백령배’에서 우승, 4단에서 단숨에 9단으로 승단했다. 2016년엔 ‘몽백합배’ 결승에서 이세돌에 반집승을 거두며 2009~2010년 쿵제 이후 세계대회 3관왕에 등극했다. 2023년까지 51개월 연속 중국 바둑랭킹 1위를 유지하기도 했다. 2019년엔 특례로 칭화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최정상의 포석감각에 승부호흡이 괴물같다는 평을 받는다. 인공지능도 못 보는 신출귀몰한 중반부의 감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굉장한 속기파로, 현재 현역 기사 중 빨리 두기로 1, 2위를 다툰다. 상대방에 비해 월등한 포석감각에 상대방이 시간을 많이 소비하면 승부호흡으로 흔들어가며 더욱 시간 차이를 벌린 후 시간공격으로 끝내버리는 것이 일반적인 커제의 승리 공식이다.
하지만 구설도 많았다. 2016년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대결한 이세돌 9단이 초반 2연패 하자 "이세돌이 0-5로 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인류 대표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또 "알파고가 내게 접바둑(실력 차가 나는 상대에게 돌을 미리 몇 개 놓고 시작하는 것)을 둘 정도는 아니다. 선을 양보할 수는 있다"며 "내가 알파고에 이길 가능성은 60%”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듬해 더 업그레이드된 알파고에게 커제는 3연패 했다. 2019년엔 대국 중 자신의 뺨을 때리고 돌을 던지는 행동을 해 결국 SNS로 사과했다.
이 커제가 또 한번 좋지 않은 일로 화제의 중심이 됐다. 메이저 세계기전인 LG배 결승전에서 초유의 반칙패를 당한 것이다. 커제는 22일 한국기원 신관에서 열린 변상일 9단과의 이 대회 결승 3번기 2국에서 두 차례나 '사석(死石·따낸 돌) 관리' 규칙을 위반해 반칙패를 당했다.
이틀 전 1국에서 승리했던 커제는 이날 백돌로 초반 18수 만에 우상귀에서 흑 1점을 따냈으나 사석 통에 제대로 넣지 않았다.
대국은 계속 진행됐으나 백 44수가 착수된 뒤 이 상황을 파악한 유재성 심판이 커제에게 경고와 벌점 2집 공제를 선언했다. 중국 국가대표팀 감독이 대국장으로 건너와 항의했지만 33분 만에 중국 측이 수긍해 경기가 재개됐다. 하지만 불과 몇십수 뒤 커제가 다시 사석 규정을 위반했다. 백 80수에 우상귀에서 흑 1점을 따냈지만 따낸 돌을 또 사석 통에 넣지 않은 채 82수째에 착수하자 변상일이 이의를 제기했다.
이를 확인한 심판은 커제에게 '경고 2회' 누적으로 반칙패를 선언했다. 중국 측은 또 이의제기했으나 주최 측은 사전에 한국 경기 규정을 설명한 점과 영상판독으로 커제의 사석 관리 위반을 확인한 점 등을 들어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한국기원은 지난해 11월 규칙 개정을 통해 따낸 돌을 사석 통에 넣지 않으면 경고와 함께 벌점으로 2집 공제를 결정했다. 또 경고 2회가 누적되면 반칙패가 선언된다고 명시됐다.
메이저 세계기전 결승전에서 반칙패가 발생한 것은 처음이다. 한국 바둑에서는 사석을 계가 때 사용하기 때문에 선수들이 대국 도중 상대 사석 수를 확인하고 형세 판단을 한다. 반면 중국 바둑은 사석과 관계없이 반상의 살아있는 돌만으로 집을 계산한다. 이 때문에 중국 선수들은 사석을 바둑판 근처 아무 곳에 던져 놓거나 손에 쥐고 대국하기도 한다. 이 규칙에 따라 KB바둑리그에 참가 중인 중국의 진위청 8단이 최근 대국에서 사석 규칙 위반으로 벌점을 받은 적도 있다.
다음날 열린 최종 3국에서도 커제는 사석 2개를 초시계 옆에 뒀다가 나중에 알아채고 재빨리 사석 통에 넣었다. 하지만 이를 알아챈 심판에게 또다시 경고와 벌점을 받자 결국 폭발했다. 흥분해 심판에게 큰소리로 항의하다 결국 대국장을 떠나며 결승전은 끝이 났다. 커제를 상대로 7전 전패를 당하던 변상일은 첫 승리를 거뒀다.
이 소식에 중국 온라인이 들끓었다. 중국 네티즌들은 웨이보 등 SNS에서 "이런 패배는 바둑 역사 4000년 사상 처음일 것” “김치 나라의 마술 같은 조작” "커제가 어긴 규칙은 경기 진행 실력 자체와는 상관없는 규칙이었다"처럼 원색적 비난 일색이었다. 한국이 중국에 불리한 규칙을 고집하고 있다거나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는 보이콧해야 한다는 주장들도 나왔다. 간간이 "아무리 그래도 정해진 규칙은 따라야 한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별 호응을 얻지 못하고 묻혔다.
웨이보를 운영하는 '시나'의 한 웨이보 계정은 커제의 반칙패 판정이 합당한지를 묻는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받아들일 수 없다' '규칙은 규칙이다' '관심없다' ‘기타 의견' 중 의견을 고르는 설문이었는데 참여한 1만여 명의 중국 네티즌 중 80% 이상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했다.
중국 바둑협회 측은 "22일 한국 서울에서 열린 LG배 결승 2국 반칙패와 관련해 중국 바둑 대표단은 현장에서 이의를 제기했다"면서 "사석 배치의 시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고, 판정이 너무 과도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커제나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분하고 화가 날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비슷한 일로 한국이 졌다면 한국 기사나 한국 네티즌들이 저렇게 흥분할지 의문이다. 이런 반응들이 대국 의식의 발로는 아닐까도 싶다. 커제는 프로 기사답게 침착성을 기를 필요가 있다. 국제 바둑 대회의 룰은 나라마다, 대회마다 다르다는 것을 그가 모를 리 없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