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편관세와 중국의 덤핑을 염두에 두고 관세정책을 손보고 있지만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은 제대로 된 대처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전히 대중 의존도가 높아 제대로 된 보복 카드를 꺼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2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에 따르면 중국 관영 영문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전날 중국 내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이 중국 전기차에 대해 이른바 ‘반보조금’ 조사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은 경제문제를 정치화하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잘못된 행동에 휘둘린 한국 정부의 ‘제스처 선언’과 같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중국 전기차의 한국 시장 점유율은 아직 낮기에 반보조금 조사의 전제인 한국 산업의 중대한 피해는 근거가 없다”며 “실제 조치가 이뤄질지는 알기 어렵지만 잠재적 조사 움직임은 끔찍한 결과를 낼 것”이라고 겁박했다.
이는 산업부 무역위원회가 중국산 전기차 브랜드 비야디(BYD)를 염두에 두고 상계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한 데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앞서 무역위는 EU는 전기차 보조금 조사 후 수십 퍼센트의 보조금 상계관세를 부과했다며 한국도 국내 산업 이해 관계자들이 보조금 조사 신청을 한다면 관세법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상계관세는 특정국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해 수출된 품목이 수입된 나라의 산업에 실질적 피해를 초래한다고 판단될 경우 수입국이 해당 품목에 관세를 부과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조치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운신의 폭은 극히 좁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전히 대중 수출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가량 된다. 한국 경제의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계관세 부과 시 중국의 대대적인 경제 보복이 우려된다. 정부는 1999년 중국산 마늘 관세율을 30%에서 315%로 대폭 올리는 긴급 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실시했다가 중국이 한국산 휴대폰 및 폴리에틸렌 수입을 잠정 중단하는 보복 조치를 취하면서 세이프가드를 대폭 수정, 철회한 바 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현대·기아차 등이 중국 전기차 보조금에 대한 상계관세 조사를 의뢰할 경우 해당 기업은 중국에서 퇴출될 것”이라며 “한중 간 감정의 골만 깊어지는 역효과가 날 것이다. 현재로서는 마땅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당시의 경험을 고려하면 대중 강경책을 굽히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계관세 카드도 언제든 쓸 수 있는 대책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미 글로벌 공급망이 미국과 서방세계로 나뉘고 있고 반도체와 자동차 등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한국은 미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대놓고 중국과 대립할 필요는 없지만 중국이 건드리면 우리도 사드 사태 때처럼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