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부기장으로 뽑고 ‘교육생’이라며 월 30만원만 준 항공사?

2025-05-03

정식 채용을 위해 수천만원의 교육비를 부담하고 최저 시급은커녕 교통비 정도만 받고 교육기간을 거쳐야 한다면, 이 채용 계약은 문제가 없는 것일까. 한 저비용 항공사가 신입 부기장 채용에서 교육 기간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 소송전이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2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2018년 에어인천 부기장으로 선발된 A씨는 사측과 임금 지급을 두고 2년째 소송 중이다. A씨는 ‘신입 부기장’ 채용 공고를 보고 입사했지만, 회사는 ‘인턴사원’ 채용 계약서를 쓰고 조종사 양성 교육 훈련을 거쳐야 정규직 고용을 보장한다고 했다.

조종사 자격증을 갖고 있고 일정 시간 이상의 비행 경력이 있더라도 특정 기종의 비행기를 몰기 위해선 조종사 양성 교육 훈련을 거쳐야 하는 것이 항공업계 관행이다. 에어인천은 교육 훈련 기간 동안 A씨의 신분을 ‘교육생’으로 보고 근로기준법상 보장된 최저시급, 휴가, 퇴직금, 근속기간 등을 적용하지 않기로 채용 계약서에 명시했다. A씨는 어쩔 수 없이 이 계약서에 동의했다. A씨는 2018년 4월16일부터 2019년 1월24일까지 월~금요일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교육 훈련을 받고, 회사로부터 교통비 명목의 월 30만원만 받았다.

에어인천은 훈련 비용 일체를 교육 훈련생에게 부담하게 했다. 교육에 들어가기 전 A씨는 교육비, 교관비, 교관의 교육출장비, 교육 지원 인건비 등 교육 훈련비로 총 3000여만원을 회사에 냈다. A씨는 9개월 남짓 되는 교육 훈련을 마치고 2019년 1월25일 정규직 부기장으로 채용됐다.

A씨는 2023년 7월 에어인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교육 훈련 기간 동안 계약서상 신분은 교육생이지만 회사와의 사용종속 관계에서 회사의 지휘·감독하에 직무 교육을 받고 근로를 했기 때문에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A씨의 핵심 주장이다. A씨는 회사가 교육 기간 최저시급을 적용해 임금을 지급하고, 교육 훈련비도 약정 자체가 불공정하므로 회사가 실제로 교육 훈련에 쓴 비용을 제외한 금액을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어인천 측은 훈련 부기장의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 사건의 쟁점은 훈련 부기장의 노동자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다. 2022년 대법원은 근로자가 제공한 근로 내용이 업무 수행에 필요한 교육·훈련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종속적 관계에서 사용자를 위해 근로가 제공된 이상 근로계약이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례에서 대법원은 승객이 탑승한 상태에서 기존 기사를 태우고 노선을 따라 운행 연습을 한 버스회사 견습기사가 회사를 위해 근로를 제공했다고 봤다. 견습 기간 동안 회사 소속 버스 기사로부터 지시를 받고, 사무실에 출근하고, 정해진 차를 타고 운행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A씨는 교육 훈련 기간 동안 실제 상업 비행에 투입됐다고 했다. A씨가 탄 기종의 비행 기록 서류를 보면 A씨는 우측석(T)에 앉아 비행했다는 표시가 돼 있다.

저비용 항공사일수록 훈련 부기장 처우가 열악하다. 취재를 종합하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 항공사는 훈련 부기장에게도 기본급을 지급한다. 교육 훈련비를 훈련 부기장이 부담하게 하지도 않는다. 대신 3년, 5년 등 의무로 일해야 하는 기간을 두고 이 기간 내 퇴사할 경우 교육 훈련에 들었던 비용을 상환하도록 한다. 수년 전 이스타항공, 코리아 익스프레스 에어 등 소형 항공사가 교육 훈련비로 장사를 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기자가 확보한 에어인천 훈련 부기장 처우 관련 자료를 보면, 에어인천은 수시로 임금, 교육 훈련비 등 인턴사원 채용 계약서상 조건을 바꿨다. 2023년에는 교육 훈련비 선납은 유지하되 ‘교육생이 실제로 참여한 훈련 시간을 기준으로 최저시급을 지급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2023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 이전까지 작성된 계약서에는 최저시급이 유지되고 훈련비용 선납 규정도 사라졌다. 대신 6년간 의무 재직하는 조항이 들어갔다. 지난해 9월 이후부턴 임금이 교통비 지원 정도로 다시 줄었다. 에어인천 노조 관계자는 “단체협약이 없고 소형 항공사다 보니 경영 상태, 조종사 인력 수급 상태 등에 따라 사측에 유리한 대로 처우 규정을 바꾼다”고 했다.

A씨는 2019년 6월 퇴사한 뒤 타 항공사로 이직했다. 1심에선 A씨가 패소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A씨 법률대리인인 이지헌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사측과 1심은 계약서상 문구가 ‘교육’이라며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사측이 법적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교육 훈련인 것처럼 계약서 작성을 강요했다”며 “교육수강생을 뽑는데 모집 공고와 합격 통지 메일에 신입 부기장이라 돼 있겠나. 교육 훈련 기간에 단순 조종 기술뿐 아니라 사훈, 회사 역사 등 직원으로서 소양 교육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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