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살아도 부품사는 죽는다... '전기차+트럼프' 악재에 '곡소리'

2024-11-25

트럼프 2기 출범에… "보편관세 시행시 도산 우려"

부품 적은 전기차 리스크+ 저가 중국산 부품까지

인력없고 투자금 없는 소기업… "방법이 없다"

"당장 방법이 없습니다. 돈이 없으니 투자할 방법이 없고, 전문 인력이 부족해서 연구 개발도 쉽지 않아요. 전기차가 안 팔리는데 전기차 부품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건 당장 리스크가 큽니다. 여기에 자동차 수출마저 어려워진다면 저희 같은 업체는 직원들 월급도 못 주는 상황이 올 겁니다."

국내 한 자동차 부품업체 고위 관계자 A씨의 말이다. 직원 20여 명의 소기업으로, 국내 완성차 업체의 3차 협력사로서 꾸준히 먹고살 길을 만들었지만 최근엔 내부에서 위기감이 상당해졌다. 부품업계에 부는 구조조정 바람에 위기감을 느낀 직원들이 줄줄이 퇴사하고, 글로벌 시장엔 전기차와 자율주행 바람이 불면서 투자가 시급하지만 돈이 없다.

A씨의 사업장과 같은 국내 중소 자동차 부품업계에선 지난해부터 흘러나오던 곡소리가 더욱 커졌다. 내연기관에 의존했던 부품을 전기차로 채 전환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저가 중국산 부품에 경쟁력은 낮아지고, 최근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면서 수출 불안감까지 커진 탓이다. 업계에선 앞으로 2년 내 중소 부품업체 20%가 도산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소 부품업계의 위기감이 대폭 커진 건 최근 2024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다.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보편 관세'가 국내 완성차 업체 보다 부품업체에 더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트럼프 당선인이 내건 '보편관세'는 중국에 60%의 고관세를, 각국에는 10~2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공약이 시행될 경우 미국에서 판매하는 자동차를 한국에서 수출할 때 최소 10%의 관세를 내게된다. 현재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로 관세가 0%인 상황에서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미국에서 판매될 한국산 자동차의 가격 상승은 불가피하다.

완성차 업체의 부담도 상당하지만, 부품업체의 위기감은 더욱 크다. 한국에서 만들어 바로 가져갔던 자동차에 앞으로 10% 관세를 부담해야한다면 한국산 자동차의 수출이 줄어들 수 밖에 없고, 이는 한국 부품업체들의 물량 축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어서다. 미국으로 부품을 바로 수출하더라도 '보편관세' 정책이 시행되면 10%의 관세를 내야하기 때문에 사실상 국내 부품업체들이 대미 수출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대부분 없어지는 셈이다.

보편관세로 인한 부품업체의 타격도 이미 예견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약 4700여개의 국내 중소 자동차 부품업체(10인 이상 기준)가 2년 내 20% 이상 어려워지거나 도산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한국 중소기업의 대미 수출이 보편관세가 10%로 책정될 경우 12.6%, 20%로 적용될 경우 무려 21.6% 줄어들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전기차 전환과 중국산 저가 부품 등으로 이미 악화된 업황에서 당장 타개책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초 자동차 업계에 날아든 전기차 전환으로 인해 부품업계는 이미 어려움을 겪어 왔다. 전기차는 내연차에 비해 전체 부품 수가 적어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고, 최근엔 전기차 캐즘(일시적 정체기)으로 인해 기껏 투자한 전기자 부품 납품마저 줄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 등이 업계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더 작은 규모의 업체들은 이마저도 따라가기 버겁다. 내연기관 부품으로 겨우 먹고 살아온 상황에서 전기차나 자율주행 부품 기술에 투자할 자금 여유가 없어서다. 전기차 전환 이후 부품업계에 양극화가 짙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산 저가 자동차가 몸집을 불리면서 이에 따른 불황도 짙어지는 추세다. 중국산 자동차 업체들이 현지에서 저렴한 부품 조달로 가격 경쟁력을 갖추면서 중국 부품업체로 눈을 돌리는 완성차 업체가 많아진 탓이다. 최근엔 독일 주요 부품업체인 보쉬 마저도 2032년까지 독일 사업장 내 3800명을 포함해 전체 5500명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가시밭길이던 업황에 트럼프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국내 부품업계의 시름은 앞으로 더욱 깊어질 예정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와 정부의 지원 등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당장 전국에 포진한 수만여개의 부품업체를 모두 살리기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예상에서다. 인력 감축과 투자 악화에 이어 부품업체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힘을 얻는 이유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트럼프의 보편관세로 수출이 줄어든다고 해서 현대차, 기아가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품업체들은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줄도산할 우려가 충분한 상황"이라며 "부품업체들의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규모가 큰 업체는 투자를 하지만, 작은 업체는 투자금 마저 없는 상황이다. 당장 정부의 지원이 아니라면 묘수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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