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골리앗을 물리치는 다윗'이나 '시장을 흔들 파괴적 혁신'이 되길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시장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전에 없던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 신생 기업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비교적 자유롭고 민첩하게 여러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할 때 신생 기업이 유리한 위치에 서기도 한다. 하지만 기존의 터를 흐트리고 갈아 엎어야만 새 길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피문데이가 최근 생리대 제조 공장을 자회사로 인수했다. 필자는 미래 유망 산업이라 불리는 펨테크 스타트업의 대표이면서 동시에 2차 산업으로 여겨지는 제조 공장의 대표가 됐다. 공장을 직접 보유하고 운영하기로 결정하면서 제조 및 공급의 안정성 확보, 시장 반응 속도 향상, 제품 연구 및 견본품 실험 추진, 비용 관리 효율화 등 기대하는 효과가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설레는 일은, 제품을 실제로 사용하는 고객과 생산 현장을, 브랜드와 제조사를, 2차 산업과 3차 산업을, 같은 산업 안에서 서로 흩어져 파편으로 존재하던 자원, 사람, 경험을 연결해 '함께 하는 혁신'을 만드는 것이다.
월경은 오랫동안 여러 산업에 흩어져 다뤄졌다. 생리대, 탐폰과 같은 월경용품을 만드는 업체, 월경주기 추적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주체, 관련 고민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곳이 서로 달랐다. 해피문데이의 초석은 2016년 '깔창 생리대' 기사를 접하고 진행한 '걱정 없는 1년 생리대 기부'와 '초경 가이드북 출판' 프로젝트다. 당시 10대 친구들과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생리대를 지원받는다고 해서 고민이 전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월경용품 사용법, 월경통, 월경전증후군, 월경주기 중 겪는 신체와 감정의 여러 변화들까지 월경은 어떤 하나의 제품, 기능, 답변으로 말끔히 해소되기에는 어려운 복잡하고 연속적인 경험임을 실감했다. 이는 동떨어져 보일 수 있는 생리대 기부와 도서 출판 프로젝트를 병행한 계기가 됐다.
이후 본격적으로 창업을 결심하면서 '월경 경험을 혁신하는 헬스케어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8년 전만 해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유기농 순면 생리대를 기획하고 개인의 월경주기에 맞춰 용품을 배송하는 구독 서비스의 특허를 출원했다. 월경 건강 관리 서비스와 제품, 정보까지 한 번에 접근할 수 있는 모바일 앱을 개발했으며 누적 조회수 1900만이상의 여성 건강 콘텐츠를 축적했다. 경계를 넘나드는 도전을 지속할 수 있던 배경은 월경을 여성 건강의 주요 지표로 바라본 데 있다. 여성이라면 대부분 40년 가까이 약 한 달 주기로 반복하는 월경이 다면적 경험이며, 이를 제대로 개선하려면 여성용품, 케어 서비스, 건강 정보를 잇고 모으는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함을 깨달은 것이다.
연결의 힘은 기업이 속한 산업이 아닌 고객의 경험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생긴다. 펨테크 선두주자로서 지닌 정보통신 기술력, 브랜드를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 젊은 세대의 신선한 시선을 제조 현장에 공유한 것과도 같은 원리다. 이 모든 연결 시도를 통해 기업은 고객의 목소리를 반영한 한층 더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역으로 제조 현장이 보유한 고도의 전문성과 섬세함도 제품 및 서비스 기획, 배포, 운영, 제공에 적용할 수 있다. 통합과 연결이 없다면 수십 년간 변화를 증험하며 체득한 현장 전문가들의 통찰을 이용자에게 전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시장을 없애는 대신 새 숨을 불어넣고 흩어진 자원을 모아 성취를 이루며 여러 세대가 힘을 합쳐 큰 길을 이뤄갈 연결의 힘을 믿고 실천하는 창업자가 많아지길 기대한다.
김도진 해피문데이 대표 ceo@happymoon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