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순대(sundae, soondae)는 한국의 음식으로, 돼지의 창자에 채소나 당면을 비롯한 각종 속을 채우고 선지로 맛과 색깔을 낸 후 수증기에 쪄내어 만든 음식으로 남한과 북한에서 모두 인기 있는 분식이다.
순대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중국 북위(北魏)의 고양(高陽: 山東省) 태수(太守) 가사협(賈思勰)이 532-549년 경에 펴낸 종합적 농서(農書)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 양 피순대와 양고기 순대 그리고 선지 순댓국에 대한 조리법이 등장한다. 산둥(山東) 지역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가깝고, 그 당시 고구려나 백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으므로 산둥 지역의 순대는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순대에 관한 최초의 문헌은 《음식디미방》 이다. 이책은 1670년경 조선 시대 안동 지역에서 살았던 석계 부인 안동 장씨 정부인(貞夫人) 장계향이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의 재령 이씨 종가로 시집온 후 75세 때 며느리들과 딸들에게 전래의 음식 조리법을 물려주기 위해 저술한 요리책인데, 이 책에 선지를 넣지 않은 개(犬)의 창자로 만든 순대가 나온다.
그리고 1600년대에 1700년대 초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방문》에는 소의 창자로 만드는 순대가 등장한다. 또한 1766년 농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와 1809년 일종의 여성생활백과인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선지를 넣지 않은 소 창자로 만든 순대가 소개되어 있다.
오늘날 순대는 종류가 다양하다. 우선, 돼지 창자 대신 명태 배속을 주머니로 삼아 만드는 동태순대가 있고, 오징어를 피로 사용하는 오징어순대가 있다. 돼지 창자 또한 대창, 소장, 막창, 새끼보(자궁, 암뽕)를 사용한 순대가 있다.
순대에 사용되는 내용물은 더 다양하다. 보통 당면과 선지가 많이 들어가는데,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갈아서 숙주나물과 배추, 두부, 파, 생강, 선지, 새우젓을 넣고 섞어 만든 소를 넣는 것도 있다. 삶은 채소와 고기, 기타 돼지고기 부속물 등을 넣은 순대도 있다.
순대에 사용되는 돼지 창자나 순대 피의 종류, 내용물과 조리법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명성이 높은 순대들이 있다. 함경도 사투리로 푸짐하다는 뜻이 있으면서 아버지나 아저씨를 뜻하는 사투리이기도 한 아바이에서 유래된 아바이순대가 한 예이다.
전남에서도 이름난 순대들이 몇 개가 있는데, 과거 나주읍성의 순대도 맛있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나주읍성의 순대는 곡식이 많이 생산되는 나주평야라는 곡식산지 및 지리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
곡식의 생산이 많은 나주에서는 과거에 읍성 안에 정미소가 있었고, 양조 공장도 있었다. 정미 과정에서 부산물이 많이 나왔고, 그 부산물을 사료로 활용하기 위해 돼지를 키우는 곳들이 많았다. 돼지를 키우는 곳에서는 정미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뿐만 아니라 양조 공장에서 탁주를 거르고 남은 찌꺼기인 술지게미를 사료로 썼다. 그런데 술지게미에는 발효된 것으로 알코올기가 남아 있었는데, 이것을 먹은 돼지의 창자는 얇았고, 그 창자로 만든 순대는 순대 피가 부드럽고 맛있었다.
고령자분들 중에는 종종 그때의 맛있는 나주읍성 순대의 맛을 잊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이야기를 귀담아듣거나 기록하는 사람들이 없다. 아마 그런 말씀을 하시는 고령자분들이 돌아가시게 되면 나주읍성에서 돼지를 키워서 도살한 이야기나, 술지게미를 먹은 돼지 창자로 순대를 만들었던 사실을 아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나주읍성 순대뿐만 아니라 우리 농업은 기계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농업기술과 문화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특히 기록되지 않은 문화는 굉장히 빨리 소실되고 있어, 다음에 콘텐츠 자원으로도 사용하기 어렵게 되어 가고 있다. 늦은 감이 있으나 나주읍성 순대처럼 잊혀져 가는 농업 콘텐츠를 찾고, 이를 정리하고, 전승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