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치전’에서 본 K컬처의 또 다른 미래 [이지영의K컬처여행]

2025-12-04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창극 ‘이날치전’을 보러 갈 일이 생겼다. 이날치라는 이름은 이미 밴드 이날치 덕분에 익숙했다. 덕분에 처음 보는 창극이지만 묘하게 친근했고, 전설적인 실존 명창의 삶이 어떻게 무대에서 펼쳐질지 궁금증이 앞섰다.

막이 오르자 금세 흥미가 생겼다. 서양 뮤지컬이나 오페라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완성도와 긴장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무대 전체를 채운 신체의 리듬, 예인들의 소리, 살아 움직이는 장단은 우리 것이지만 새롭게 재구성된 현재적 경험이었다. 낯설게 느껴질 것 같았던 창극이 오히려 편안하고 흥겨웠던 이유는, 무대가 관객과 함께 만들어지는 하나의 ‘판’이었기 때문이다. 추임새, 웃음, 박수, 호응은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공연의 일부였고, 관객의 기운이 무대를 밀어주는 독특한 공동체적 감각이 살아 있었다.

그런데 공연을 보며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이 ‘함께 만드는 판’이라는 감각이 사실 지금의 K팝 팬덤 문화와 닮아 있다는 점이었다. K팝 콘서트에서 응원봉의 빛, 떼창, 실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반응, 팬들의 참여와 조직력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공연의 리듬을 함께 완성하는 또 하나의 공동체적 실천이다. 서로 다른 시대이지만, 전통 공연의 ‘관객이 판을 만든다’는 구조와 K팝 팬덤의 ‘관객이 무대를 확장한다’는 감각은 동일한 원리를 공유한다.

이렇게 보면 전통예술과 K팝 사이에는 한국적 공동체 미학의 연속성이 흐르고 있지는 않을까. 누군가의 소리에 다른 누군가가 추임새로 응답하며 판이 커지고, 그 판 위에서 새로운 감각이 태어난다는 방식은 어쩌면 한국 문화가 지닌 심층적 감각이다. 전통 공연은 무대 위의 예인과 관객이 호흡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K팝 팬덤은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적 규모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다. 무대는 달라졌지만, 예술을 함께 만드는 감각은 동일한 결을 갖고 있다.

전통은 더 이상 박제된 과거가 아니다. 전통은 현대와 서로를 비추며 새로운 감각을 만든다. ‘이날치전”의 에너지를 느끼며 나는 한국문화가 앞으로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길은, 서로 다른 인종과 국적,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판 위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새로운 공동체성을 확장하는 일일 것이다. 공연장이든 온라인이든, K컬처는 이미 이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과 조건을 갖추고 있다. 어쩌면 K컬처의 미래는 서로 다른 세계를 잇는 플랫폼이 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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