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 창작진, ‘2025년형 K히어로’ 표방
손흥민부터 탄지로까지 세대 아우르는 웃음 유발
이머시브극 맞닿은 면모···젠더 프리 캐스팅 눈길

콘서트로 바쁜 헌트릭스 대신 불려온 저승사자와 싸우던 홍길동이 일부러 잡혀줬더니, 기자들은 희대의 대도가 ‘체포’됐다며 생중계한다. 홍길동의 믿음직한 동료 자바리, 유튜브 라이브로 해명하다 오히려 가짜뉴스로 몰리자 발끈한다. “아니 네가 가짜뉴스지! 내가 100만 유튜버 활빈당 TV의 자바리야!”
국립극장 마당놀이 <홍길동이 온다>는 ‘2025년형 K-히어로’ 홍길동을 표방한다. 극단 미추의 <홍길동전> 원조 창작진이 2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리는 공연이다. 그간 세월도 세월이지만, 마당놀이 핵심 요소가 풍자와 해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오늘의 시대 감각을 어떻게 반영하느냐가 공연의 설득력을 좌우한다. 2025년 홍길동은 사회적 단절과 불평등을 넘어 ‘공정’을 요구하는 평범한 서민의 대변자로 무대에 소환됐다.

“금년 세상 참 요란하게 돌아갑디다. 개혁에, 개방에, 개정에, 개발에, 계좌에, 계엄에, 계산에, 계계계계… 주식, 부동산 들쑥날쑥, 관세, 탈세 삐쭉빼쭉, 그래도 오늘만큼은 다 잊고 한바탕 웃어야지요!” 마당놀이 진행자라 할 수 있는 꼭두쇠가 한바탕 무대를 열면 홍길동이 ‘번쩍’ 날아서 등장한다. ‘한국형 히어로’의 활약을 공중 활공을 비롯해 마술, 아크로바틱 등 화려한 연출로 시각화했다. 공중 활공은 <홍길동전>부터 이어온 대표 장면으로, 배우들이 5m 상공을 날며 역동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출신 저승사자와 홍길동이 맞붙는 2인 활공 장면이 볼거리다.
홍길동을 체포하기 위한 ‘국제 히어로 엑스포’도 재미를 준다. 헤라클레스, 미야모토 무사시, 손오공에 이어 갑자기 ‘손흥민’이 축구공을 드리블하며 등장한다. 이어 호명되는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귀멸의 칼날> 카마도 탄지로에 이르면 세대를 아우르는 웃음이 객석을 채운다.

마당놀이는 요즘 유행하는 ‘이머시브극’과 맞닿은 면모도 있다. 첫머리를 돼지머리에 복을 비는 고사로 시작하는데 이어 배우들은 끊임없이 관객에게 말을 걸고, 눈을 맞추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흐린다. 마당놀이 특유의 사회 비판은 관객들의 호응이 있어야 비로소 생동감이 생겨난다.
공연에선 세상의 부조리와 부패를 나열하며 시사들을 녹여내지만, 표현이 다소 두루뭉술해 저마다 느끼는 ‘통쾌함’의 정도는 조금씩 달라질 듯하다. 손진책 연출은 지난 10월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사회가 양극단으로 갈리면서 현실 정치 풍자가 전두환 정권 때보다도 쉽지 않은 지점이 있다”고 했다.
전통 연희를 한데 펼쳐 놓는 무대에는 흥이 넘친다. 50여명의 배우·무용수·연주자들이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춤과 노래는 절로 손발 장단을 치게 한다. 배우 캐스팅에도 동시대 감각을 입혔다. ‘원조’ 김성녀의 뒤를 이어, 젊은 여성 소리꾼 이소연·김율희가 ‘젠더 프리’ 홍길동을 선보인다. 원작에 없던 여성 활빈당원 ‘삼충’은 홍길동에 대한 애정을 능청맞게 표현하며 유쾌한 매력을 더한다.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2026년 1월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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