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前 국회의장 “DJ, 野 좌장 총리로 기용 반대세력 함께 가야 정치” [2025 신년특집-1945년생 해방둥이의 광복 80년]

2024-12-31

DJ 평화적 정권교체 가장 감격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애통해

이 시대 가장 빛나는 건 ‘국민’

“노태우는 야당과 3당 합당을 했다. 노무현은 김대중 수하를 잡아 가두라는 특검을 받아들였다. 저 양반(김대중)은 야당 수괴를 총리로 임명했다. 김대중은 야당 수괴와 대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수도 없이 만났다. 모두 여소야대라는 숙명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였다. 지금 정부는 정치가 없고 보이콧만 한다. 대화도 안 했다.”

탄핵정국으로 어수선하던 12월 중순 서울 여의도 김대중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묻자 세 전직 대통령의 사례를 예로 들며 ‘여소야대의 숙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정치적 미숙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문 전 의장은 “야당은 반대하는 게 일이다. 반대하지 않는 야당은 야합일 뿐”이라며 “대통령이 책임지니까 대통령 책임제다. 여소야대도 대통령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대하는 세력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스스로 무너진다”고 강조했다.

1945년생인 문 전 의장은 서울대 법대 64학번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전태일평전’의 저자인 인권변호사 조영래와 ‘영원한 재야’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동지다. 사업을 하던 1979년 무렵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정치에 뛰어들었다. 청년 조직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김대중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노무현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14대와 16∼20대 국회의원을 했고, 20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을 끝으로 정계를 은퇴했다. 광복 80년, 해방둥이인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일까. 문 전 의장은 주저 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1997년 12월19일을 떠올렸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평화롭게, 수평적이고,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정권이 바뀐, 민주주의가 완성된 날이에요.”

문 전 의장에게 그날은 “아버지와 화해를 한 날”로도 기억됐다. 그의 부친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지낸 박정희의 ‘찐팬’이었다. 문 전 의장은 김 전 대통령 당선일, 부친 묘소를 찾아 “아버지, 제 말 맞았죠. 평화적 정권교체가 됐죠?”라며 회한의 눈물을 쏟아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을 마주해야 했던 때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을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서 듣고 곧장 봉하행 비행기를 탔다.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 도착하고 권양숙 여사를 찾았다. 권 여사는 문 전 의장에게 자신은 도저히 못보겠다며 시신 확인을 부탁했다. 문 전 의장은 “시신이 크게 망가져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다 수습이 됐더라. 멀쩡하진 않았지만…”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수사받겠다고 서울을 오갈 때, 옆에 좀 서줄걸. 따로 봉하에 가 위로도 좀 해줄 걸”이라며 “내가 너무 비겁했다. 지켜주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고 했다.

문 전 의장은 광복 80년 대한민국의 빛나는 발전의 원동력은 ‘국민’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선 것도, 나라를 잘되게 만든 사람들도 결국 국민”이라며 “국민의 ‘힘’이 여기까지 이끌었다”고 힘줘 말했다. ‘광복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도 국민이라고 했다. 다만 “한 명으로 의인화하면 백범 김구”라며 “그 캄캄한 시절에도 문화 강국을 꿈꿨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문 전 의장은 우리가 당면한 시급한 과제를 갈등 해소라고 했다. 그는 “의견이 다른 것을 인정해야(Agree to disagree) 민주주의가 된다. 죽여야 하는 적으로 대한다면 민주주의는 없고 약육강식 정글이 된다”고 강조했다. 미래 세대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도 내놨다. 문 전 의장은 “중국 대륙을 휩쓸던 만주·여진족은 그들이 쓰던 언어조차 거의 소멸했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살고 있다. 못할 것이 뭐가 있느냐”며 “큰 비전을 실현하려면 실력을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고 했다.

문 전 의장은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낸 대표적인 ‘지일파’ 정치인이다. 2019년 강제동원 문제 해법으로 ‘문희상안’을 내놓기도 했다. 문 전 의장은 “우리가 대양으로 진출하려면 일본을 거쳐야 하고,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하려면 우리를 거쳐야 한다”며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서로 할 일이 많은 나라”라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wit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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