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시절 박석민(40)은 대표적인 천재형 선수로 꼽혔다. 고교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냈고, 프로에 와서도 상무 제대 후 23세 시즌에 이미 100안타를 때렸다. 출루율 4할만 8차례 기록할 만큼 선구안이 좋았고, 방망이에 공을 맞히는 재주 또한 탁월했다. 온갖 기묘한 자세로 방망이를 휘두르면서도 강한 타구를 만들어냈다.
그런 박석민이 지도자로 첫 시즌을 시작한다. 인연 깊은 이승엽 두산 감독의 부름을 받아 타격코치로 함께 한다. 현역 시절 천재성이 워낙 번뜩였던 터라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되기 어렵다’는 일각의 속설이 더 부담스러울 수 있다. 프로 선수라고 해도 현역 시절 그만큼의 재능 있는 선수는 또 흔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1년 일본 요미우리에서 연수코치로 지내면서 박 코치도 그런 부분을 고민했다. ‘잘 치는 선배’가 아니라 한 명의 코치로 선수들에게 다가서야 하는 만큼 선수 시절과는 접근 방식부터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박 코치는 “사실 선수 하면서 성적이 좀 나오던 때는 후배들이 어떻게 치냐고 물어봐도 ‘방법이 뭐가 있노. 그냥 앞에서 때리면 되지’라고 답하고는 했다”고 웃었다. 솔직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한창 잘 치던 때는 공보고 치면 되는 ‘간단한’ 걸 못하는 후배들이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재도 나이를 먹는다. 현역 시절 박 코치도 세월을 거스르진 못했다. 30대 후반이 되면서 부상은 더 잦아졌고, 부진도 길어졌다.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성적이 이어졌다. 박 코치는 “말년 들어서 야구 잘 안되니까 ‘선수가 성적이 안 나오면 이런 마음도 드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지도자가 되면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공부를 많이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박 코치의 천재 이미지 뒤에는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선수 시절 그는 KBO리그 대표적인 ‘메모광’이었다. 매 타석 끝날 때마다 더그아웃 한편에 앉아 수첩에 깨알 같은 글씨로 메모를 했다. 볼카운트별로 투수가 어떤 공을 던졌는지, 자기는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정리했다. 메모가 쌓이면서 가장 큰 자산이 됐다.
박 코치는 “선수들한테도 그런 걸 좀 주문하고 싶다. 당연히 구단에서 분석해서 주는 데이터가 있지만, 자기가 타석에서 느낀 게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선수들이 그런 걸 해 놓으면 앞으로 야구하면서 성장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박 코치는 “선수들이 마음껏 치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기본기를 강조했다. 그는 “123이 있고 그 다음 456이 있다고 하면, 123도 아직 안 돼 있는데 789로 가려고 하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며 “그래서 기본기부터 많이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타석에서 공 하나하나 집중하고, 하체로 치는 것. 그가 말하는 기본기다. 기본기라서 오히려 더 어렵고 불편하다. 박 코치는 “그렇게 어렵고 불편한 것들을 하루, 일주일, 한 달씩 꾸준히 하다 보면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