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부터 백지화까지…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의 재구성

2025-10-07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 금융 정책·감독 기구 재편을 추진했다. 특히 지난달 7일 당정대가 정부조직 개편안을 추진하면서 이 같은 구상은 구체화됐다.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 기능을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로 옮기고 남은 감독 기능을 금융감독위원회로 재편하는 것이 뼈대였다. 이와 함께 금융감독원을 거시건전성 감독(금감원) 부문과 금융소비자 보호(금융소비자보호원)로 쪼개 금감위 밑에 포함한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금융 당국과 금융업계, 나아가 학계에서까지 반대 의견이 제기됐다. 이에 당정대는 지난달 25일 개편안을 철회했다. 금융계에서는 “개악을 멈춰 다행”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금융계에서는 이번 논의를 계기로 ‘금융감독 체계 개편이 무조건 소비자 보호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전직 금감원 부원장의 논문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일부 금융 당국 관계자들이 주목하던 논문이 하나 있다.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2월 한양법학회 학회지에 게재한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위한 법적 제언’이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 시절 금감원 산하 금융소비자보호처장(부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맡던 2023년 같은 당 혁신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논문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먼저 금융위의 금융 산업 정책은 기재부로 넘기고 감독 정책은 금감원으로 이관하자는 주장이었다. 김 교수는 “동일한 행정 주체가 금융 정책·감독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 양 기능 간 견제와 균형이 훼손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아예 금융위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금융 정책과 금융 감독 권한이 금융위에 집중돼 있다”며 “이러한 독점 현상은 금융 관료의 권력화로 발전했다”고도 했다.

또 다른 주장은 금소처를 금소원으로 승격해 독립시키자는 것이었다. 거시건전성 규제는 금감원이, 영업행위 감독(소비자 보호)은 금소원이 담당하는 이른바 ‘쌍봉형’ 체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현재는 금감원이 건전성·영업행위 감독을 함께 수행하는 통합 감독 체계다.

김 교수는 “건전성 규제와 영업행위 규제를 각기 다른 감독 기관이 담당함으로써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해 감독 수준이 높아지고 전문성이 확보되며 이해 상충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감독 목표 달성에 매우 유익하다”고 했다.

이는 그동안 개혁 성향 경제학자 사이에서 제기되던 주장과 유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3년 윤석헌 당시 숭실대 교수(전 금감원장)와 김상조 당시 한성대 교수(전 공정거래위원장)를 필두로 한 경제학자들이 금융위를 해체하고 쌍봉형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성명서를 낸 것이 대표적이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와 같은 일을 방지하자는 취지였다.

김 교수는 이후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에 참여했다. 감독 체계 개편안 수립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당정대의 금융 당국 개편안과 김 교수 논문에 실린 주장은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는 평가다. 금융 정책·감독 분리와 금소원 설치를 역설했다는 점에서다.

“쌍봉형 체제를 무조건 좋다고 할 수 있는가”

당정대가 금융 감독 체계 개편을 추진하자 금융계에서는 일제히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근본적으로는 ‘조직 개편 자체가 실제 금융 산업과 소비자 보호 모두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감독 기관이 2곳(금융위·금감원)에서 4곳(재경부·금감위·금감원·금소원)으로 급격히 늘어나 비효율이 커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때 금감원 내에서 주목을 받은 것이 영국 사례였다. 마침 지난 6월 영국 의회에서 쌍봉형 체제를 비판하는 보고서가 나왔다. 영국은 2012년 금융서비스청(FSA)을 건전성을 감독하는 건전성감독청(PRA)과 소비자 보호를 담당하는 금융규제청(FCA)으로 쪼갰다.

이를 두고서 보고서는 “FCA와 PRA 간 중복 감독·정책에 대한 우려는 실증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상황”이라며 “감독 당국 간 업무 중첩은 결국 금융 혁신을 지연시키고 새로운 금융 상품 출시를 방해하며 금융 산업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고도 꼬집었다. 이 보고서는 당시 금감원 내부 직원 사이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호주처럼 다른 ‘쌍봉형 체제’ 채택 국가를 주목하는 의견도 있었다. 호주는 1998년 건전성 감독을 담당하는 호주건전성규제청(APRA)과 소비자 보호를 맡는 호주증권투자위원회(ASIC)로 이원화된 쌍봉형 감독 체계를 도입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호주 2위 보험사인 HIH보험그룹과 퇴직연금 운용사인 트리오캐피털이 연이어 파산하면서 쌍봉형 감독 체계의 효율성을 두고 의문이 제기됐다. 당시 호주에서는 APRA와 ASIC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탓에 신속한 대응에 나서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당국 관계자는 “만약 금소원이 분리됐으면 금감원과의 의사소통 문제 때문에 소비자 보호 강화나 분쟁조정 이슈에서 마찰이 빚어졌을 공산이 크다”며 “이는 오히려 신속한 소비자 민원 해결이나 분쟁조정에 걸림돌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오히려 최근 10년간의 논의를 보면 감독 조직을 통합하는 것이 금융 산업과 소비자 보호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쪽이 주류 의견에 가까웠다”고 해석했다.

정부의 정책 동력 확보 측면에서도 조직 개편안은 탄력을 받기 어려웠다. 금융위는 6·27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이 대통령으로부터 수차례 일 잘하는 부서로 주목을 받았다. 당정대에서도 금융 감독 체계 재편안을 밀어붙일 경우 미국 관세정책 대응과 소상공인 지원, 가계부채 대책, 생산적 금융과 같은 각종 현안 대응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고 전해진다. 야당의 반대와 함께 감독 체계 개편안이 철회된 배경으로 꼽힌다.

지난달 25일 당정대의 발표로 금융 정책·감독 기구 재편은 없던 일이 됐다. 다만 현행 체제를 유지하는 동시에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쪽으로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모습이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이찬진 금감원장은 “당과 정부·대통령실의 취지에 따라 금융 소비자 보호 기능의 공공성·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감원은 최근 소보처를 수석부원장 산하 본부로 격상한다는 조직 쇄신안도 발표했다. 분쟁조정 1~3국을 각 업권 감독 부문별 최선임 조직으로 재편하는 안도 함께 내놓았다. 그동안 거시건전성을 담당하는 부서가 각 업권별 최선임 역할을 해왔던 점을 고려한다면 파격에 가까운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건전성’보다 ‘소비자 보호’에 중점을 두는 현 정부 금융 당국의 기조가 보다 구체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여러 차례 금융위기를 겪으며 시장 안정과 건전성에 우선순위 둔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는 금융 소비자에게 안정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금융 소비자의 자산을 안전하게 보호할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금융 기구 개편안 백지화가 역설적으로 소비자 보호 기능 강조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 셈”이라고 해석했다. 다른 금융계 관계자는 “당국 조직 개편을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이번 사건을 토대로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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