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의 젊은 경제학자 가브리엘 쥐크만(38)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프랑스 정가와 학계를 뒤흔들고 있다. 정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그가 제안한 이른바 부유세가 재정 건전성을 회복할 방안으로 주목받으면서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계와 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이 정책의 실질적인 세수 확대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오히려 경제 전반에 부정적 충격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최근 프랑스에서는 쥐크만이 주장하는 이른바 쥐크만세(Zucman Tax)를 둘러싸고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2013년 토마 피케티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순자산 1억 유로(약 1650억 원)를 초과하는 부유층에게 자산 가치의 최소 2%를 매년 세금으로 부과하자고 주장한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전 세계를 뒤흔든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는 쥐크만이라는 차세대 ‘락스타 경제학자’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쥐크만의 주장이 최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경에는 악화된 프랑스 재정 상황이 있다. 프랑스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13%에 달하고 재정 적자는 6%에 근접한 상태다. 이에 조세 정의를 회복하고 초부유층들이 사회적 책임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강화되는 새로운 조세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쥐크만세의 직접 대상은 약 1800명의 초고액 자산가로 추산된다. 이에 관련된 이들 사이에서는 세금 폭탄 우려 속에 긴장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도 나타난다. 유럽 최고 부호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은 “이 조치는 자유경제를 해체하려는 시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최근 영국 더 선데이 타임스를 통해 “(쥐크만은) 극좌 활동가”라며 “사이비 학문을 앞세워 자유경제 질서를 무너뜨리려 한다”고 비판했다.
창업자들 사이에서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쥐크만세가 시행되면 스타트업 주식 평가액에 따라 막대한 세금을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대표 인공지능(AI) 기업 미스트랄AI의 공동창업자 아르튀르 멘슈는 “조세 정의라는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현금 유동성이 부족한 창업자에게는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쥐크만은 이와 관련해 “현금 납부가 어렵다면 국가에 주식을 양도하라”고 응수했고 비판자들은 “공산주의적 발상”이라고 맞받았다.

상당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중 여론은 찬성이 압도적인 양상이다. 여론조사기관 이포프(IFOP)가 좌파 사회당 의뢰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86%가 쥐크만세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최근 프랑스를 뒤흔드는 주요 시위 현장에서도 ‘부자에게 세금을(Prendre aux riches)’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들이 등장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거시경제학 권위자인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정부가 적자 축소를 위해 복지 삭감과 세금 인상이라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 한다면 부자들도 함께 짐을 나눈다는 인식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주류 경제학계의 평가는 냉담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부유세 도입으로 경제가 파괴한다는 우파의 주장은 과장됐다”면서도 “부유세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근본적 문제는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르면 영국 재정연구소(IFS)가 2011년 발간한 보고서 ‘미를리스 리뷰’(Mirrlees Review)는 부유세의 세수 증대 효과는 미미하고 공정성과 효율성 모두에서 한계를 보인디고 분석한다. 자산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하기 어렵고 세금 도입 시 자본 유출이 불가피하다는 점 때문이다.
세수 효과를 둘러싼 견해차도 크다. 쥐크만은 자국에서 부유세로 매년 200억~250억 유로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회의론자들은 추가 세수가 50억 유로에 불과할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실패한 정책이라는 평가도 많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199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2개국이 부유세를 시행했지만 이후 폐지하는 곳들이 늘어났다. 오스트리아는 1994년, 독일은 1997년, 스웨덴은 2007년에 각각 제도 중단을 알렸다. 현재 순자산을 기준으로 부유세를 유지하는 국가는 노르웨이, 스페인, 스위스 정도에 그친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현 프랑스 총리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최근 르파리지앵과 인터뷰에서 “정부는 부유세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조세 정의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언급해 고소득층을 겨냥한 다른 세제 개편 가능성은 열어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총리가 좌파와 극우는 물론 중도 세력 내부에서도 압박을 받고 있다”며 “어떤 형태로든 부유층에 대한 세 부담 증가는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는 르코르뉘 총리가 2026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사회당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연 소득 25만 유로(부부 합산 50만 유로 기준) 이상 고소득자를 겨냥한 세금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에게 소득의 최소 20%를 세금으로 납부하도록 하는 조치가 검토 대상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