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삼성의 인공지능(AI) 메모리 칩 사용 승인을 위해 최대한 빠르게 일하고 있다”라며 “삼성으로부터 HBM3E 8단과 12단 제품을 모두 납품받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HBM3E는 엔비디아 주력 AI 가속기인 호퍼(H200)와 신제품 블랙웰에 사용되는 최신 고대역폭메모리(HBM) 5세대다. 블랙웰의 본격 대량 양산을 앞둔 엔비디아가 삼성전자 HBM3E 인증도 서두르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젠슨 황 “삼성 HBM3E 사용 위해 최대한 서둘러”
23일 (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황 CEO는 이날 홍콩과학기술대(HKUST)에서 열린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에서 블룸버그TV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삼성전자 HBM3E 인증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황 CEO는 최근 실적발표와 외부 강연 등에서 블랙웰용 HBM3E 공급사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만을 언급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납품하는 HBM3(4세대)는 주로 H20에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H20은 엔비디아가 미국 정부의 대중 수출 제재를 피해 성능을 낮춰 내놓은 중국 전용 제품이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가 H20 같은 저성능 칩의 중국 수출도 막아선다면, 아직 최신 HBM을 납품하지 못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구형 HBM 매출마저 줄게 된다. 회사가 HBM3E 엔비디아 납품에 사활을 건 배경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말 “품질 테스트 과정상 중요한 단계를 완료해, 4분기 중 판매 확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中, 전 세계 AI 발전 도와” 추켜세운 젠슨 황
이날 홍콩 배우 량차오웨이(양조위) 등과 함께 홍콩과기대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황 CEO는 “엔비디아는 지난 25년간 중국에서 일해왔다”라며 “중국에는 홍콩, 선전 등 4곳에 놀라운 디자인 센터와 수천 명의 엔지니어가 있어 그들이 엔비디아에 크게 기여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2기에 미국 정부의 대중 제재가 더 강화될 전망이지만, 엔비디아가 중국 사업을 축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개방형 연구는 현대 과학의 기적 중 하나이자 반드시 지켜야 할 글로벌 협력 형태”라며 AI 등 첨단 기술 공급망이 미-중 두 쪽으로 갈라지는 것에 우회적으로 반대를 표명했다.
중국의 AI 기술을 추켜세우기도 했다. “홍콩과기대가 중국의 AI 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고, 전 세계 AI 발전을 돕고 있다”라면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에 따르면, 황 CEO는 졸업식 후 좌담에서는 홍콩·마카오·광둥 등을 연결하는 그레이터 베이 지역에 대해 “메카트로닉스와 AI 기술이 동시에 존재하는 유일한 지역”이라며 “다른 대규모 제조 거점인 일본·독일은 훨씬 뒤떨어져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탈중국 시작한 엔비디아 협력사
그러나 엔비디아 진영의 ‘탈(脫) 중국’은 시작됐다. 디지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엔비디아 그래픽카드를 조립하는 협력사인 홍콩의 PC 파트너 그룹은 지난주 본사를 싱가포르로 이전하고 싱가포르 증시 2차 상장 계획도 밝혔다. 이 회사는 금융·경영은 홍콩에서, 제조와 연구개발(R&D)은 중국·대만에서 주로 해 왔는데, 이를 각각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동남아로 옮긴다는 것이다. 이는 엔비디아 협력사가 중국 본토에서 규모를 축소하는 첫 신호탄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주 3분기 실적발표에서 황 CEO는 트럼프 2기 대응을 묻는 애널리스트 질문에 “새 행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지지한다”라며 “모든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고객을 지원하고 시장에서 경쟁하겠다”라고 답했다. 미국의 수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H20을 포함한 엔비디아의 중국 매출은 증가했으나, 중국 매출의 비중은 15.4%로 1년 전(21.2%)보다 대폭 축소됐다. 미국 등 중국 외 지역에서 회사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