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교수의 치과의사 2막1장] 덕분입니다(2)

2024-12-16

경기도 과천시보건소 업무대행 치과의사 김영수

지난 달 29일은 첫 눈 치고는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낮 비행기를 예약하여 일본 오사카로 출국 준비를 하고 차를 타고 인천으로 가던 중 항공기 사정으로 두 시간 연착이 된다는 통지를 받았다.

할 수 없이 공항에서 점심을 여유롭게 먹고 출국장에서 기다리는 중에, 다시 문자 연락이 왔다. 다시 두 시간 더 지연이 된다고. 눈 때문에 활주로 사정이 안 좋은가 하고, 할 수 없이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 한 편이 다 끝나기 전에 다시 이륙 지연 문자가 왔다. 다시 두 시간 더. 원래 예정보다 6시간 지연이다. 오사카 사정을 잘 아는 필자도 당황이 되는 순간이었다.

칸사이 착륙이 저녁 10시가 넘을 것이고, 입국장을 빠져나가는데 1시간, 공항에서 기차나 리무진의 마지막 차에 탑승할 수 있을까? 저녁을 먹으러 가려 해도 기다리는 줄이 만만치 않았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대충 떼워야 했다. 필자의 나이에는 조금 비싼 국적기를 탔으면 ‘저녁’이라도 챙겨 주었을 것이라 뒤늦은 후회를 해 보았다. 오사카 도착 후 오사카 시내 가는 리무진 버스를 겨우 얻어타고, 다시 비싼 할증료 붙은 택시를 갈아타고 예약한 호텔에 들어가니 오전 1시가 넘었다.

이렇게 열심히 일본을 찾아온 것은 ‘쇼핑’이나 ‘유흥’을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다음 날인 11월 30일은 일본에서 ‘구취 관리의 대가(大家)’로 알려진 Honda Shunichi(本田 俊一) 선생님의 1주기 추도식에 초대를 받아서였다.

작년 11월의 쌀쌀한 바람 속에서 필자에게 ‘생리적 구취의 관리법’을 가르쳐주신 Honda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당시에는 급히 비행기표를 구하다보니 토요일 오사카에 와서 일요일 아침에 귀국하는 표 밖에 구하지 못하였다. 일본의 장례 풍습인 ‘쯔야(通夜)’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 다음 날 귀국하는 일정을 일행에게 알리고 풀지도 못했던 짐을 챙겨 새벽에 특급 열차로 공항으로 향하면서, 스승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느꼈었다.

1주기 추도식은 일본 나름의 관례대로 진행되었고, Honda 선생님의 가족들과 일본 내 치과의사 지인들 몇 분에게 필자가 준비해 간 USB를 전달해 주었다.

USB 내에는 Honda 선생님께서 한국 내 KEBAC(한국구취조절연구회)회원들의 교육을 위해 내한하셨을 때마다 촬영했던 사진들과 일본구취학회 참석 때마다 우리 회원들과 혼다 선생님과 촬영했던 사진 및 동영상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 자료들을 종합하여 필자가 더듬거리는 일본어로 설명하면서 틈틈이 파워포인트 동영상으로 제작한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필자가 교수로 활동하면서 부수적으로 익혔던 ‘잔기술’을 활용한 셈이다. 금년에 필자가 발표했던 구취 관련 논문의 초록을 덧붙이면서, 말미에 돌아가신 Honda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첨부해서 USB 제작을 마무리하였다.

다음 날인 12월 1일은 일본 내 혼다식 구취조절연구회 총회 및 합동연수회가 있는 날이었다. 대회장에게 5분간 시간을 내어 달라고 부탁을 하여 허락을 받았다. 단상에 올라가, 간밤에 메모했던 일본어로 필자 본인의 정년으로 인한 KEBAC 회장 이임을 고지하였고, 후임 KEBAC 회장으로 김아현 박사(덴탈시그널치과의원장)를 일본 회원들에게 소개하면서 향후의 양국간의 지속적인 교류를 당부하였다. 이로써, 김아현 박사는 일본 내 혼다식구취조절연구회와 공식적 교류를 하는 KEBAC회장에 등단하는 것이고, 일본구취학회에서의 위상도 확립되는 것이다. 약간은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일본 회원들에게 유창하게 일본어로 인사하는 김아현 박사를 함께 참석했던 KEBAC 회원들 모두가 자랑스러워했다.

필자의 이임 인사말 말미에 일본어로, 필자에게 ‘구취’를 가르쳐 주신, 돌아가신 Honda 선생님께 감사하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필자를 믿고 도와준 일본 내 회원들과, 필자를 믿고 따라준 우리 KEBAC 회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하면서, 이 모두가 여러분 덕분이라고 표현을 하였다.

정년을 지낸 금년에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을 마쳤다고, 필자 스스로 만족하면서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쇼핑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에, 공항 내 면세점을 이용하기로 했는데, 이미 Honda 선생님 가족들이 필자를 위해 준비해 주신 선물로 가방이 터지기 직전(?)이 되어, 짐 부치는 곳에서 초과 금액이라는 것을 난생 처음으로 지불하면서도, 후련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공항에 마중 나온 아내가 가방이 빵빵한 걸 보더니, 또 쓸데없는 걸 사왔는지 의심하다가 내용물을 보더니 활짝 웃는다. 남편이 이제야 ‘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요, 이제 공부 마무리하고 뇌를 쉬도록 할께요. 지금부터 몸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마음 편하게 삽시다. 당신 덕분에 교수도 해 보고,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해 보았네요, 늦었지만 남은 여생 동안 당신 힘들지 않도록 노력할께요.”라고 속으로 대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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