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현지 시간) 자정이 지날 무렵 도착한 미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 시설 앞. 구금자 330명의 공항 이동을 위한 버스 8대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시설 앞에는 조기중 워싱턴 총영사 등 정부 관계자들이 긴장감이 감도는 얼굴로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 내로 구금자들에게 지급될 물과 간식을 싣는 모습도 포착됐다.
한 시간여 지난 새벽 1시 10분. 시설 정문이 열리면서 한국인 316명과 중국인 10명, 일본인 3명, 인도네시아인 1명 등 총 330명이 차례대로 버스에 탑승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버스 입구 앞에서 탑승자들에게 여권을 차례대로 나눠줬고 이 과정에서 밝은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건네는 모습도 목격됐다. 새벽 2시 17분께 8대의 버스 행렬은 미 이민 당국 소속 차량의 호송을 받으며 줄줄이 시설을 떠났다. 이달 4일 ICE의 단속에 의해 체포·구금된 지 일주일 만의 귀국길이었다.
버스에 탑승한 우리 국민 중 일부는 취재진에게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며 화답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안도감과 그동안의 긴장이 풀려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체포 당시의 모습인 듯 사복 차림이었으며 손에 수갑도 차지 않은 모습이었다.

시설에 구금됐던 이들은 지난 24시간 동안 실망과 안도감이 교차하면서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를 탄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외교부 주미대사관 브리핑을 종합하면 우리 정부가 석방 절차가 중단됐다고 최초로 인지한 시점은 9일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현장 대책반이 시설 측에 연락하니 “우리도 모른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협력 업체 측에 따르면 비슷한 시각 시설 내부에서는 ICE 측에서 석방 준비를 위해 개인 소지품을 나눠주다 70~80명을 남겨둔 상황에서 작업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가 정확한 석방 지연 이유를 파악한 것은 10일 오전 조현 외교부 장관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만난 자리에서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 측 사정이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이 ‘구금된 한국 국민이 모두 숙련된 인력이니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서 계속 일하면서 미국의 인력을 교육·훈련시키는 방안 등에 대해 한국의 입장을 알기 위해 귀국 절차를 일시 중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조 장관이 우리 국민이 놀라고 지친 상태여서 먼저 귀국했다가 다시 (미국에 돌아와서) 일하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고 미국도 우리 의견을 존중해 귀국하도록 하겠다고 한 것”이라고 전했다.

석방 지연 이유가 당초 일각에서 제기된 수갑 착용 여부는 아니었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다만 한미 간에 수갑 착용 여부를 두고 이견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이 관계자는 “미 측이 수갑을 채워서 석방하려 했다”며 “규정상 호송할 때 수갑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정부가 요청한 대로 수갑 등의 신체적 속박 없이 호송할 것을 지시해 구금자들은 수갑을 벗고 시설을 나올 수 있었다.
석방이 무산된 긴 밤을 지나 10일 오후 1시부터는 당국이 구금자들에 공용 전화로 외부와의 전화 통화를 5분씩 허용하면서 내부 분위기가 외부에 알려졌다. 한 협력 업체 관계자는 “석방될 줄 알고 기대했던 사람들이 많이 실망했다”며 “한 시간만이라도 빨리 나가고 싶다고 말한 직원도 있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또 “건강에 큰 이상이 있는 사람은 없지만 시설의 환경이 상당히 안 좋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른 관계자도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 진행률이 98%에 이른 상황에서 이번에 구금된 인원은 전문 인력이라 이들의 재입국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미 측이 재입국 시 불이익이 없다고 했지만 이런 사달을 겪은 마당에 당사자가 다시 미국에 오려고 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11일 새벽 2시(한국 시각 오후 3시) 시설을 나온 버스 행렬은 430㎞ 떨어진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전세기를 이용하는 만큼 일반 창구를 이용하지 않고 버스를 탄 채 바로 활주로에 진입했다. 차량의 경우 우리 정부는 한국 측이 버스를 대절하겠다고 한 반면 ICE 측이 이에 반대하면서 줄다리기를 했지만 결국 현대엔지니어링이 준비한 버스를 타기로 했다. 구금자 중에는 현대엔지니어링 측 인사도 다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버스 측면에는 조지아주 지역 버스 렌터카 업체인 ‘쿠퍼글로벌’이 적혀 있었다. 정부가 대절한 버스가 아닌 것은 자력 구제의 원칙 때문이라고 외교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차량 통행이 적은 새벽 2시에 출발한 만큼 교통 체증은 없었다. 300명이 넘는 인원을 통제하는 것이 쉽지 않은 데다 버스 내부에 화장실이 있어 중간에 휴게소는 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승용차의 경우 구금 시설에서 애틀랜타공항까지 4시간 30분이 걸리지만 버스는 ICE가 지정한 길을 이용해야 해 시간이 8시간가량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대한항공 전세기에 탑승한 외국인과 관련해 외교부 관계자는 “일본 영사가 자국 구금자를 면담한 후 희망을 파악했고, 이들이 돌아가기를 원해 한국의 전세기에 탑승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중국의 경우 정확한 경위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구금된 한국인의 비자 상태의 경우 주재원인 L비자 소지자도 포함됐다고 외교부 측은 설명했다. 주로 단기 상용 비자(B1)와 전자여행허가(ESTA) 소지자가 체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