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옷장과 서랍 속 필수품이던 ‘좀약(나프탈렌)’이 이제는 좀처럼 쓰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과거 1970~90년대에는 옷장이나 이불장마다 좀약을 넣는 것이 흔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환기가 잘되지 않는 밀폐 공간에서 장기간 노출될 경우, 호흡기나 신경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가 잇따르면서 인식이 바뀌었다. 특유의 알싸한 냄새로 세대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만, 그 향의 정체는 사실 ‘유해가스’였다.
최근 미국 굿하우스키핑(Good Housekeeping)이 보도한 사례에 따르면, 한 가정이 리모델링 기간 중 묵은 좀약 냄새가 가득한 임시 숙소에 머물다 가족 모두 두통, 구토, 어지럼증을 겪었다. 조사 결과, 좀약 성분 증기에 장기간 노출된 것이 원인이었다.
좀약의 주요 성분은 나프탈렌(naphthalene) 또는 파라디클로로벤젠(paradichlorobenzene)으로, 두 물질 모두 해충을 죽이는 ‘살충제’ 계열이다. 하지만 공기 중에 휘발되면 인체에 흡입되어 두통, 어지럼증, 구토, 빈혈, 간 손상 등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어린이에게는 적은 양으로도 심각한 중독 증세를 일으킬 수 있다.
일부 국가는 아직 사용이 허용되지만 유럽연합(EU)은 2008년부터 나프탈렌을 ‘발암 의심 물질’로 지정해 가정용 제품에 사용을 금지했다. 한국 역시 2010년대 초부터 환경부와 식약처가 나프탈렌 함유 제품의 제조·수입을 단계적으로 금지하면서, 약국과 마트에서 좀약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냄새가 난다는 건, 곧 그 화학성분을 흡입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좀벌레 방제는 건조하고 통풍이 잘되는 환경을 유지하고, 천연 시더 블록이나 라벤더 팩 등 안전한 대체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결국, ‘좀약’의 퇴장은 단순한 생활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화학물질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이 높아진 시대의 결과다. 한때 ‘깨끗함의 상징’이던 냄새가 이제는 ‘유해의 경고’로 인식되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