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환경주의자의 하루

2025-03-12

환경을 생각하는 척, 하는 일이 하나 있다. 테이크아웃 커피컵을 종일 물컵으로 사용하는 일이다. 여러 번 사용하면 환경 호르몬이 검출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내 몸보다 소중한 것이 나와, 내 후손이 살아갈 지구 아니던가! 문제는 커피가 하루 한 잔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상은 오전부터 서너 개의 커피컵으로 비좁다. 환경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 편하자고, 머그컵이나 텀블러를 씻는 게 귀찮아서 그렇게 할 뿐이다. 어설픈 환경주의자는 앞으로도 어설프게 환경을 생각할 게 뻔하다.

영화와 시리즈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차지만, OTT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은 세상 온갖 문제에 앵글을 들이댄 각종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일이다. 그렇게 눈에 들어온 작품은 2017년 선댄스영화제 관객상과 2018년 서울국제환경영화제 국제경쟁 관객상 등을 받은 <산호초를 따라서>(Chasing Coral)이다. 바다는 늘 푸른색으로 그곳에 있지만, 이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바다는 죽어가고 있다. 최근 30년 동안 지구상의 산호초 50% 이상이 소멸했다. 대규모 산호초 군락으로 유명한 호주의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산호초는 2016년 한 해에만 29%가 죽었다.

이유는 우리 모두 안다. 기후변화에 따라 바닷물의 온도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시작된 산호초 백화현상은 이제 전 세계 바다 어디서든 목도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산호초의 백화현상은 일종의 스트레스 반응으로, 수온이 조금만 높아져도 금세 나타난다. 산호초 내부의 미세조류가 광합성으로 양분을 공급하는 능력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산호초가 사라지면 그곳에 기대어 살던 작은 물고기들이 사라진다. 다음 상황은 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시리라. 바다의 죽음은 곧 인간의 ‘끝’을 의미한다. 해결책은 있을까. 크고 작은 도전이 계속되고 있지만,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활동을 멈추는 것 외에는 답이 없어 보인다. 다큐멘터리 감독의 “다 같이 나아가면 돼요”라는 말처럼 선명한 답이 없음에도,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요즘이다.

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의 주인공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아마존 원주민 출신이 아니면서도 아마존을 사랑하는, 하여 지키고 싶었던 사람이다. 아마존 인근 엘 이딜리오에 사는 그는 “콧대가 세고 자부심이 강한” 수아르족과도, “술이나 한잔 얻어먹을까 하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히바로족과도 척지지 않고 살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금을 캐려는 ‘노다지꾼’들과 열대 동물을 탐한 ‘사냥꾼’들이 늘어나면서, 아마존은 눈에 띄게 앓기 시작했다. 말이 황금과 열대 동물이지, 그들의 일은 기실 아마존을 밀어버리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연애 소설이나 읽으며 소일하려던 노인의 바람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노인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해 오는 ‘꾼’들에 맞서 인간 사냥을 감행한 암살쾡이를 찾아 나선다. 밀림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밀림을 사랑하는 자신이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170쪽 길지 않은 소설이니 직접 확인하시는 것이 좋겠다. 다만 아마존의 한 자락이라도 지키고자 했던 노인의 당찬 도전만큼은, 기후위기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 새길 만하다. 이렇게 쓰고 다시 책상을 살핀다. 테이크아웃 커피컵 서너 개가 책상 위에 여전하다. 어설픈 환경주의자의 하루가 이렇게 또 지나간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