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 복도에서 이 대리가 “팀장님, 문제가 좀 생겼어요”라고 말을 건다. 이야기를 다 들은 김 팀장은 “일단 생각해보고 방법을 알려줄게”라고 답한다. 그 순간 ‘원숭이’는 이 대리의 등에서 김 팀장의 어깨로 옮겨갔다. 이후 김 팀장은 부하 직원들이 하나씩 넘긴 ‘원숭이’를 해결하느라 정작 ‘고릴라’ 같은 관리자의 핵심 업무에는 집중하지 못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관리자의 시간 관리(1974년 11·12월호)’는 관리자들이 흔히 범하는 시간 관리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권한 위임’이 보편적인 화두가 된 요즘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내용이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이 1922년부터 발행해온 HBR은 이처럼 현장의 문제와 이론적 분석을 결합한 깊이 있는 논의로 경영 담론을 이끌어왔다. HBR 창간 100주년을 기념해 2022년에 발간된 특별판이 이번에 비즈니스북스에서 ‘HBR 위대한 통찰’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HBR 편집부가 지난 한 세기 동안 게재된 수많은 글 가운데 경영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어온 핵심 논고 30편을 엄선했다.
경영학만큼 현장과 밀접한 학문도 드물다. HBR은 이론과 데이터를 넘어 현장에서 문제를 풀어온 경영자와 연구자의 통찰을 담아 독보적인 영향력을 구축했다. ‘파괴적 혁신’ ‘리엔지니어링’ 등의 개념이 HBR에서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고 피터 드러커, 게리 하멜과 같은 저명한 경영학자들이 이 잡지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영국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현대 경영 의제를 거의 혼자 설정해온 저널”이라고 평가했다.
경영이라는 개념이 산업계에서 완전히 자리 잡기 전인 창간 초기에는 기업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분석 중심의 글이 주를 이뤘다. 생산성과 일관성을 극대화하는 시스템 설계, 재무 관리, 조직 구조 개선 등이 핵심 주제였다. 그러나 산업이 고도화되고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주제는 거시경제, 금융 규제, 노사 관계 등으로 확장됐다. 나아가 리더십, 동기 부여, 다양성, 지속가능성, 심리학 등 전통적으로 경영의 영역이 아니라고 여겼던 분야까지 범위를 넓혀갔다.
이번 책에는 시대적 파장을 일으킨 HBR의 논고들 가운데 지금 읽어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로 가득하다. 기술 발전과 글로벌 환경의 급변에도 인간과 조직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터 드러커가 ‘자기경영의 시대’에서 자신의 강점과 한계를 인식하고 스스로를 관리하라는 조언은 21세기 조직의 구성원들도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이다. 마이클 포터의 ‘경쟁의 전략’은 기업이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분석해야 할 요인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대표작이다. 또 HBR에서 처음 소개된 ‘블루오션 전략’은 경쟁 없는 시장 창출이라는 새로운 전략적 사고를 제시하며 전 세계 기업의 사고 방식을 바꿨다.
책에는 HBR이 시대 변화에 따라 젊은 독자들의 감각에 맞춰 제작한 오디오 컨텐츠의 내용도 담겼다. 코로나19 시대에 제작된 ‘당신이 지금 느끼는 불편함의 정체는 슬픔이다’와 같은 콘텐츠는 힘들어 하는 이들을 위해 위로와 따뜻한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HBR은 인쇄 잡지라는 전통적 매체의 한계를 넘어 경영 지식 멀티플랫폼으로 변신하기 위해 소셜미디어, 웹사이트, 팟캐스트 등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종이 매체에 실린 긴 글을 선호하지 않는 젊은 세대의 현재 HBR 웹사이트 월 방문자 수는 1100만 명에 달한다.
총 30편의 글은 각각 30~40페이지 정도의 길이인데다 명확한 언어와 실제 사례로 논점을 풀어가기에 가독성이 높다. 순서대로 읽지 않고 관심 있는 주제를 골라 읽으며 내용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일부 글에서는 오늘날의 감수성에 뒤떨어지는 표현이 드물게 보인다. 고전을 절대화하지 않고 시대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해야 한다는 점은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책은 지난 100년의 아이디어 묶음집이 아니라 지금의 경영 현장에서도 여전히 숙고하고 써먹을 수 있는 실전 이론서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원칙과 시대에 따라 새롭게 해석돼야 할 과제를 함께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복도에서 또다시 ‘원숭이’를 만나는 순간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에 시간을 써야 할지 그 답을 떠올리게 만든다. 2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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