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에 덮친 12·3 비상계엄 사태에 이어 무안공항 제주항공 2216편 참사로 연말연시가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대중문화계도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가수 조용필이 20집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연기하는 등 여러 가수 공연이 취소됐다. 반면에 총 여섯 차례 콘서트를 준비해 온 임영웅은 참사 당일 3회 차를 그대로 연 데 이어 남은 세 번도 진행한다고 한다. 들리는 말로는 참사 후 회차들은 그 전에 비해 상당히 절제하고 콘셉트도 일부 바꿨다. 일각에선 비판도 하지만, 국가 애도기간에도 경제는 돌아가야 하고 팬들을 위해 존재하는 대중연예인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은 그 자체로 존중돼야 한다.
안방 시청자 입장에서 와닿은 변화는 세밑을 장식하던 지상파 방송 3사의 연기·연예 시상식이 일제히 증발한 점이다. 앞서 일부 방송한 SBS와 KBS는 각각 ‘연예대상’과 ‘연기대상’만 남겨놓고 있었다. 마지막 사흘간 ‘연예대상’ ‘연기대상’ ‘가요대제전’을 잇따라 예정했던 MBC는 모두 결방했다. 일부는 아예 취소됐고, 녹화가 진행된 건 추후 방영한다는데 시점이 요원하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지만, 3사 시상식이 사라진 ‘난 자리’가 의외로 크지 않았다. 톡 까놓고 말하면 이들 시상식은 그해 해당 방송국 시청률과 화제성에 기여한 이들을 불러 모아 안겨주는 공로상 대잔치에 가깝다. 드라마 시청률이 50~60%에 이르던 시절엔 그해를 돌아보며 스타들의 패션과 화술을 감상하는 재미라도 있었다. 그 사이 종편 채널 출범, OTT 오리지널 콘텐트 폭증, 그리고 유튜브 채널 활황 등 업계 환경이 싹 바뀌었다. KBS 책임프로듀서(CP) 출신의 한 방송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관성에 의한 제작이란 얘기가 나오지만, 다른 데선 시상하는데 우리만 빠지면 사기가 꺾여서 안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 잘게 쪼갠 상마다 공동수상자가 즐비하고 소감도 거기서 거기인 ‘판박이 시상식’이 되풀이된다.
일본에서 매년 12월 31일에 열리는 음악방송 NHK 홍백가합전은 1951년 시작된 이래 한 번도 취소된 적이 없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조차 제62회 무대는 추모와 위로 외에도 재건·희망·연대를 강조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일부 수익금은 재해 복구 지원에 사용됐다.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열리는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중계하는 미국 방송사의 특집 프로그램들 역시 자사 홍보가 아닌 ‘송구영신’ 자체에 집중한다.
그간 지상파 3사 공동시상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실현 가능성도 없고 이젠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이참에 방송사들이 2025년을 공동체의 한 해를 닫고 여는 뜻깊은 프로그램의 원년으로 만드는 건 어떤가. 어떤 전통이라도 시작이 있어야 대물림되는 법이다. 시상식 참석자들과 시답지 않은 토크 중에 보신각 타종 소리가 들리곤 하던 연말 풍경을 이젠 끝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