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한국인 대학생이 고문으로 숨지는 등 캄보디아 내 한국인 대상 범죄가 늘자 정부가 실효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12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한국인 대학생 A씨(20대)는 지난 7월 17일 가족에게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현지에서 연락이 두절된 그는 3주 뒤인 8월 8일 캄보디아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 당국은 A씨가 취업 사기를 당하고 감금됐다가 살해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고수익 미끼서 시작된 사기극
최근 A씨처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이 강력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 한국인 감금 피해 신고는 2023년 17건이었지만 지난해 220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벌써 330건(8월 기준)으로 이미 지난해 피해 규모를 넘어섰다.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단기 고수익 일자리 공고를 미끼로 한 사기 행각이 대표적이다.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일자리 알림을 보고 연락해 온 구직자를 “특별한 자격 요건이 없어도 한 달에 수천만 원을 벌 수 있다”고 꼬드기는 방식이다. 단순 컴퓨터 작업이나 번역 등이라고 주장하는데, 항공료 등 여비를 먼저 보내준다며 유혹하기도 한다.
구직자가 이를 믿고 주민등록등본과 인감증명서를 제출하고 캄보디아로 향하면 조직원들은 이들의 여권과 휴대전화, 금품을 빼앗은 뒤 감금한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투입하거나 코인·주식 리딩 사기, 로맨스 스캠 등 온라인 범죄 행위를 강요하기도 한다.
정부는 지난 7월부터 캄보디아 방문객을 상대로 ‘캄보디아 내 취업 사기 주의’ 안내문을 배포하고 있다. ▶고수익 보장, 항공료 선지급 등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다면 지인 소개라도 의심 ▶SNS·유튜브 채용 광고는 사실관계 확인 ▶취업비자 없이 현지에서 취업·구직 활동하는 건 불법 ▶채용 기업 담당자와 직접 상담 및 업무 내용 확인 ▶모든 계약은 문서화, 외국어 계약서는 내용 숙지 뒤 서명 ▶본인 명의 통장 대여는 불법 행위 등의 내용이 담겼다. 취업 사기를 당하거나 감금된 경우 캄보디아 경찰 핫라인(117)로 신고하도록 안내한다.
캄보디아를 상대로 다양한 해법 마련도 촉구하고 있다. 우선 외교부는 신고자의 신원과 위치정보만으로 출동할 수 있도록 캄보디아 당국에 신고 절차를 간소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캄보디아는 구금된 피해자가 직접 신고해야 대응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
외교부는 그간 두 차례 영사협의회에서 코리안데스크(한 인사건 전담반) 설치 방안도 검토해 달라고 했다. 앞서 필리핀에선 한국인 피살이 잇따르자 정부는 마닐라 등 한인밀집지역에 CCTV를 대폭 늘리고 경찰청 내 셉테드 전문가를 파견하는 등 지원에 나섰다. 지난 8월 한인 밀집 지역 8곳에 코리안 데스크를 공식 출범했는데, 필리핀에서 특정 국가 국민을 대상으로 현지 경찰서에 전담 대응 조직을 운영하는 건 처음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0일 쿠언폰러타낙 주한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현지에서 한국인에 대한 범죄가 지속해서 발생하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온라인 스캠 근절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외교부 장관이 직접 초치에 나선 건 다소 이례적으로, 외교적 압박을 지속해야 캄보디아 당국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거란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실효성 있는 대안을 위해선 공동 대응이 필요하단 목소리도 나온다. 경찰 영사를 비롯한 캄보디아 대사관 인력 보강 등을 위해서는 각 부처 간 협의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캄보디아는 경찰력이 빈약하다. 한국 기준에 맞춰 해결책을 촉구하는 건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며 “경찰청 등 각 부처와 협력해 캄보디아의 전향적 자세를 요청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잡코리아와 함께 해외 채용 공고 검증 절차를 강화했다. ▶급여 및 근무 조건을 과장한 공고 필터링 강화 ▶해외 채용 공고 등록 시 안내 문구 보강 ▶캄보디아 지역 공고의 경우 사전 검수 및 승인 절차 의무화 등이다. 고수익, 취업 알선 등 문제 소지가 있는 키워드 자동 필터링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채용 공고 등록 단계부터 사기성 공고를 걸러내기 위해서다.
자발적인 온라인 스캠센터 근무자에 대한 처벌도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외교부에 따르면 온라인 스캠이라는 걸 알고도 가족에게 비밀로 한 채 자발적으로 범죄에 가담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구출된 뒤에도 대사관의 영사 조력을 거부하고 캄보디아 온라인 스캠센터로 돌아오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해외 보이스피싱 사범 대응 TF에서 관련 부분도 논의하고 있다. 캄보디아 방문·취업 관련 유의 사항을 지속 안내하는 등 노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