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작가가 대형 출판사에서 낸 책 중 가장 덜 팔린 책, 딱 그 책보다는 좀 더 많이 팔았으면 좋겠다”
배우 박정민이 출판사 대표로 독자 앞에 선다. 인기 작가 김금희의 신작, <첫 여름, 완주>를 들고. 자신의 연기가 아니라, 자기가 펴낸 책에 대한 책임감을 어깨에 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손을 대야 되니 일이 많아 “퇴근 길엔 피곤해 죽겠다”는 출판사 사장님이다.
그의 출판사 ‘무제’가 펴낸 <첫 여름, 완주>는 여러모로 ‘튀는’ 소설이다. 오디오북으로 먼저 세상에 나왔다. ‘책을 읽는다’는 보통의 행위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 시각장애인에게 먼저 이 책을 들려주고 싶다는 취지에서 ‘듣는 소설’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통상의 오디오북도 아니다. 박정민을 비롯해 고민시, 염정아, 김도훈, 최양락 등 유명 배우들이 이 프로젝트에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오디오북을 제대로 하면, 귀로 듣는 영화쯤은 된다는 듯이 작정하고 만들었다.
기존의 출판사였다면 시도하지 못했을 견적의 오디오북이다. 본업이 잘 나가는 배우라서, 출판사 대표는 부업이라 가능했을 법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시도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 여러모로 어려운 출판, 오디오북 시장에 관심을 환기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는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를 시도했을까. 지난 25일 오후, 노트북 화면 너머로 박정민 무제 대표와 마주했다. 작품으로 봤을 때보다 마른 것 같다고 물으니 “지난달까지 촬영했는데, 살을 빼야 할 일이 있었다”고 답했다. “올해는 더 이상 작품을 하지 않고 출판사에 매진하려 한다”고, “그렇지만 내 본업은 언제나 배우”라고 말하는 박정민 대표에게, 출판과 배우라는 두 일에 관해 물었다.
첫 시도, 완주
박정민은 <첫 여름, 완주>의 출간 소식을 직접 보도자료를 써 알렸다. 이메일 서두엔 그가 직접 개인사를 담아 쓴 편지를 실었다.
“저희 회사의 첫 책 <살리는 일>이 출간될 즈음 저희 아버지께서 시력을 잃으셨습니다. 아들이 만든 첫 책을 보여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 상심했고, 아버지께 책을 선물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가 ‘듣는 소설’이라는 것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같이 시력이 좋지 않으신 분들이 독서와 가장 멀리 떨어져 계신 분들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었고, 그분들께 책을 선물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오디오북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박 대표의 보도자료 소개 이메일 내용 중)
<첫 여름, 완주>가 김금희라는 걸출한 유명 작가의 작품인 것도 맞지만, 이 책의 발간에 많은 이의 관심이 더 쏠린 것에는 박정민 대표의 이메일도 한몫했음은 틀림없다.
보도자료를 직접 써서 보내 화제가 됐다
배우 생활을 15년 하면서, 내가 나온 영화나 나에 대한 보도자료가 배포되는 것을 봐왔을 것 아닌가. 정말 많이 봤지만, 관심은 없었다. 그냥 봤을 때는 보도자료가 쉬워 보였는데, 막상 하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다. ‘누구한테 보내야 하지?’부터 시작해서, 너무 붕 뜨니까 소속사나 다른 출판사에 도움받아서 보낼 곳들을 찾았다. 회사 이사님하고 자료를 같이 썼는데, 그냥 보내면 싸가지 없어 보일 것 같았다(웃음).
뭔가 성의를 보이고 싶었나보다
15년을 나에 대한 보도자료가 나갔는데, 막상 박정민이라는 사람이 써서 보내는 보도자료를 받는 건 처음일 거 아닌가. 그러면 분명히 뭔가 성의를 보여야 한다, 자세히 설명도 드려야겠다 생각했다. 정리하자면, 싸가지 없다고 욕 안 먹으려고(웃음).

오디오북을 만든 계기가 아버지의 시각장애였다. 아버지도 <첫 여름, 완주>의 첫 독자 중 한 분이셨을 텐데. 반응이 어떠셨나
재밌다고 하셨다. 재밌다고 하셨는데, 표현이 워낙 없으시다. 그런데 제가 처음으로 만든 책을 읽어보신 거다. 그래서 그것만으로도 저는 의미가 있다. 어떻게 듣는지 궁금해하셨고…. 이렇다, 저렇다 말씀을 안 하셔서 뵙고 한 번 물어보려고 한다.
배우들이 나와서 직접 연기를 하는 게 흥미롭다. 기존의 ‘라디오 드라마’처럼 들리기도 하고. 둘 사이, 형식의 차이가 있나?
있다. 서술이 라디오 드라마보다 많다. 오디오북은 완전히 대본이 아니라, 소설이다. 소설은 대사와 서술로 나뉘어져 있다. 작가님의 문장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서술을 성우가 읽어주고, 배우가 연기를 한다. 기존 소설보다는 대사량이 훨씬 많은 재미가 있다.
너무 훌륭한 배우(고민시, 염정아, 김도훈, 최양락 등)가 많이 참여한다. 그런데 사업적으로 본다면, 배우가 이렇게 많이 나온다는 것은 사실 비용이 엄청 많이 든다는 걸 뜻하지 않나. 비즈니스적으로 효용이 있다고 보는지, 아니면 공익 활동의 목적(이 책엔 배우들이 재능기부 형태로 출연했다)인지 헛갈린다
섞여 있다고 본다. (목적을) 하나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본다. 어쨌든 이 책의 취지 자체는 공익을 위해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걸 그냥 하나의 좋은 일로만 남겨 놓지는 않을 생각이다. 이 책을 그만큼 비장애인 독자들에게도 팔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의미가 더 생길 수 있다. 비장애인 독자에게 이 책이 소개가 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면 그걸 먼저 들어본 장애인 독자분들은 또 기분이 좋지 않을까?
내가 (시각 장애인이) 되어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무도 관심 없는 책을 먼저 보게 된 거보다는 서점에도 많이 깔리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을 먼저 소개해 드렸다는 것 자체부터 의미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그 부분에 있어서 이 책을 많이 소개하고 싶다. 그리고, 돈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국에서는 오디오북 시장이 많이 커졌지만, 한국에서는 다소 어렵다. 이 사업에 들어온 이들이 많이 고전한다. 그래서, 박정민 대표의 시도에 많이들 관심을 가질 거다. 이 시장의 비전을 어떻게 보나?
앞길이 창창하다고는 나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디오북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제 시도를 오디오북을 만드는 업체들이나 다양한 출판사들이 베껴가도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배우들이 많이 나와 흥미를 끄는) 이런 형태는, 박정민 대표라서 시도 가능한 일 아닌가?
물론 그런 것도 있다. 그렇지만 유명 배우를 쓰지 않더라도, 사실 이 형식만 가져가도 듣는 재미가 있는 오디오북을 굉장히 많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시작이고, 뭔가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어서 캐스팅도 이렇게 하고 했던 건데,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성우가 기존의 책을 쭉 읽어주는 방식을 넘어서 오디오북 자체에 대한 콘텐츠를 만든다면 어떨까.
제가 알기로 이런 식으로 연기가 가미되고 음악과 효과음을 더해 한 편의 영화처럼 만드는 시도는 아마 없었을 것 같다. 윌라(오디오북 서비스, <첫 여름, 완주>를 윌라에서 오디오북으로 만들었다)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오디오북을 만들어본 것은 처음이라고 하니까.
다른 업체나 출판사도 해보시고, 그렇게 뭔가 계속해 시도하면서 소외 계층에도 눈길을 돌려주면 시너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방식이) 우리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첫 여름, 완주>를 들어보면 되게 재미있다. 한 번 꼭 들어보면 좋겠다. 지금은 장편이지만 일반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장편은 장편대로 남겨 놓고 30분, 40분짜리 초단편 오디오북도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스토리로?
그렇다. 누군가의 단편집의 원고를 하나하나씩. 그때는 오디오북을 녹음하는 배우도 신인이나 보이스 배우들에게도 부탁해 보고. 그런 식으로 아카이빙을 만들어 놓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렵다는 시장, 출판
다들 책을 안 읽는다는 시대에, 책이라는 매개체를 선택했다
단순히, 내가 좋아했다. 그리고… 잘 모르겠다. 느끼기에 책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너무 오랫동안 있었지 않나.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으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 같은 그런 게 좋다.
그리고, 일을 하다 보니까 느끼는 건데 책에는 사람들이 거부감을 안 가진다. 주변의 배우들, 음악 감독이나 외부의 어떤 인재들에게 “책을 만들자”라고 하면 크게 부담을 가지거나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책이라는 매개체가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안 보지만 오히려 뭔가 조금 소중해진 느낌이다.
희귀해서?
그렇다. 오히려 더 고귀해진 느낌도 있고, 그렇지만 그 이미지를 내가 입겠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냥 책이 갖고 있는 어떤 낭만이, 되게 좋다. 그리고,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도 꽤나 좋다. 순간순간, 내가 시간을 잘 보내고 있다는 느낌을 줘서. 독자분들도 그렇지 않을까?
그래도 요즘 도서 시장 관계자를 만나면 다들 “너무 어렵다”고들 한다. 체감하나?
해보니까 좀 어렵다는 걸 알게 됐는데, 큰 목표가 있어서 시작한 일은 아니라 ‘하다가 재미없으면 그만해야지’, 아니면 ‘잘 안되면 뭐 안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하다 보니까, 좀 재미가 있다. 물론 나는 본업이 있으니까, 생활을 영위할 목적은 아니었으니까, 재미있었을 수도 있다. 그냥, 내가 가진 최소한의 돈으로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책방이나 출판사 대표님들하고는 (상황이) 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제(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까 “어느 날 누워서 문득 출판사나 해볼까 이런 생각을 했다”고 썼던데
그때 합정에서 책방을 하고 있었다. 책방을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는 걸 느꼈을 때, 내가 혼자서 뭘 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책방이 완전히 문을 닫기 전에 첫 책이 나왔다. 그리고 책방은 문을 닫았고, 출판사는 계속 이어오고 있는 거다.
5년 동안 세 권의 책이 천천히 하나씩 나왔다. 책을 내는 주기가 있나?
아니다, 없다. 띄엄띄엄 이라기보다 <살리는 일>과 <자매일기>의 사이의 간격이 너무 컸다(앞서 무제가 펴낸 두 권의 책). 특별한 계획이 없었고, 본업(배우)이 바빴다. 김금희 작가님하고만 2023년에 ‘듣는 소설 프로젝트’를 계약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무엇을 기다렸나?
원고를 기다렸다. 뚝딱 나오는 게 아니니까. 소설의 형태도 다르고 하니, 시간이 좀 많이 필요했을 것 같다. 그러다가, 작년에 “이제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자매 일기>를 만들고, 올해 <첫 여름, 완주>를 내고 정말 여러 작가님하고 계약을 했다.
본격적으로 출판사에 매진하는 건가?
계속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좀 생겼다. 재미있어서. 언제 재미가 없어질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계약을 해 놓으면 제가 책임을 져야 되지 않나. 본격적으로 해보자 싶어서 구두 계약, 문서화된 계약을 많이 해놨다. 목표는 1년에 네다섯 권 정도는 내는 게 목표다.
얼마나 많이 계약했나?
지금 8~9건 정도 된다. 또 계속 찾고 있기도 하고.
지향은 계속해 ‘소외’를 다루는 책들로 한정되어 있나?
그렇지는 않다. 그건 그냥 우리의 방향성인 거고, 이번에 두 권 정도 외서를 낸다. 하나는 완료가 됐고, 다른 한 권은 계약 중에 있다. (소외랑) 상관없이, 제가 읽었던 책 중에서 좋은 걸 한다.
어떤 종류의 책을 좋아하나?
다 좋아한다. 어쩔 수 없이 가장 많이 보는 것은 소설 같고. 소설로 시작해서 아예 관심 없던 인문서나 사회과학, 과학도서도 기회가 돼서 읽어봤더니 재미있더라. 그렇게 조금씩 확장이 된다. 시집도 잘 안 읽는 편이었는데, 어느 날 시에 관한 웹 레터 제안이 들어와 읽어보니까 시도 나름 매력이 있더라. 그래서 저도 확장을 해 나가는 과정이라, 출판하도 어쨌든 그렇게 계속 확장이 되지 않을까?
직접 쓸 생각은?
없다.
너무 단호한 것 아닌가?
그러니까 뭐, 지금 당장은 아예 없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다면 뭔가? 지금 배경으로 보이는 책장에는 하루키의 책들이 눈에 띄는데
(책을 골라서 보여줘도 되겠느냐며, 화면 뒤로 보이는 책장으로 가더니 세 권의 책을 꺼내 왔다.) 항상 어딜 가면 꼭 이야기하는 책 세 권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박민규 작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김영하 작가)’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김영하 작가)’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스무 살 때 내 마음을 너무 잘 대변을 해줘서, 인생의 책 같은 느낌이다.
어떤 마음을 대변했나?
열등감. 해결되지 않는 열등감과 이별, 포기 이런 것들 너무 자극을 잘해서 책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사실 이 책으로 소설에 입문하기도 했다. 그다음으로 본 책이 김영하 작가님 책을 다 찾아봤다.
공통된 정서가 있다
뭔지 알 것 같지 않나. 그래서, 이 책은 진짜 길거리에서 읽으면서 걸어 다녔다. 그 후에도 영향을 준 책이 많은데, 그냥 제일 좋아하는 책을 물으면 내 첫사랑 같은 책들이다.
첫사랑 같다는 표현이 참 좋다
내가 놓지 않는 책들이다. 계속.

섭외 왕 박정민은 어떻게 김금희를 꼬셨나
김금희 작가의 책을 몇 권 재미있게 봤다. 유명하고 바쁜 작가일텐데, 어떻게 섭외했나
저도 모르겠다. 처음 인연은 우리 첫 책 <살리는 일>의 추천사를 써주셨을 때다. 그때도 왜 써주셨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당시에, 작가님 소속되어 있는 회사 메일 주소로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추천사를) 쓰시겠다고 하셔서 좀 놀랐다.
그때도 박정민 대표가 이메일을 보냈나
그렇다. 그때는 혼자 있었으니까(지금 무제의 식구는 박정민 대표와 신아영 이사, 둘이다). 그리고 나서, ‘듣는 소설’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그 회사로 또 메일을 보냈다. 왜냐하면, 김금희 작가님의 대사를 너무너무 좋아했다. 이 소설은 ‘대사’가 중요한 요소이니까,
그렇다. 듣는 소설은 오디오북이니까
그래서 김금희 작가님이 해주시면 진짜 너무 좋겠다고 생각해서 먼저 메일을 모내드렸다. 그랬더니,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계신다는 거다!
일이 잘 풀렸다
너무 좋은데, 도대체 왜 이걸 자꾸 해주신다고 그러는거지 싶었다. 구두계약을 했다가, 작년에 원고를 받았다.
판매 부수에 대한 목표도 있나
정확히 구체적으로는 없다. 작가님께 여쭤보진 않았지만, 개인적인 목표는 있다. 작가님이 대형 출판사들에서 냈던 소설 중에서 제일 낮은 부수를 기록한 책이 있을 거 아닌가. 그것보다 많았으면 좋겠다(웃음). 왜냐하면 (김금희 작가의 기존 책이) 워낙에 많이 팔리는 책들이다. 사실, 우리도 이번에 종이책 초도물량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부수가 많아서.
베스트셀러 작가의 위엄을 보았다(웃음)
좀 놀라서, 어쨌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 회사가 엄청 작은 회사이지 않나. 직원 두명에 사무실 이렇게 작은 데를 쓰는. 여기에서 책을 냈을 때, ‘그냥 작은 회사니까 이정도면 됐어’라는 마음을 갖게 만들어 드리고 싶지는 않다.
또, 이게 잘 팔려야 다른 작가님한테도 면이 서지 않겠나
그렇다. 당연히 그렇다. 그래서 이 책을 많이 팔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작가님의 필모그라피에 흠이 되고 싶지 않아서다. 이미 글은 너무 좋으니까, 이거를 내가 진짜 적극적으로 팔아서 작가님의 면을 좀 세워드리고 싶다는…
앞으로 나오는 책들도 다 오디오북 형태로 먼저 나오나
아니다. 이 프로젝트만 그렇다. 다른 일반 책들도 나오니까(에세이, 인문서, 번역서 등). 그런데 그 책들도 오디오북을 빨리 만들 생각이다. 종이책과 차이가 별로 없게, 빨리빨리 공급드릴 수 있게 할 생각이다.
소설을 만들고 있으니, 영상화 생각도 있나
<첫 여름, 완주>를 비롯해서, 우리가 만들어 낼 ‘듣는 소설’ 프로젝트에 속하는 소설들의 궁극적 목표는 영상화다.
진행 중인 건은?
아직은 나오지 않았다.
직접 감독을 하거나 출연할 생각은?
그거는 글쎄… 안 그러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으니 “안 합니다”라고도 말씀을 드리기 힘들다. “제가 꼭 하고 싶습니다”는 아니고. 이 책이 나오면, 드라마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니 제작사들에 좀 보내드려볼까 고민을 하고 있다.
듣는 소설 프로젝틀르 넘어서, 또 기획한 것이 있나
아직 구체화된 건 없다. 저도 지금 공부를 하고 있다. 듣는 소설을 만들 때도 시각장애인 분들의 오디오북 청취 환경을 구체적으로 몰랐다. 그냥 이런 걸 만들어서 드리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하는, 정말 관념적인 기대 정도 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들다보니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예를 들어서, 장애인 독자분들이 소설을 두 배속으로 듣는다거나, 장애인 도서관 내 오디오북 플랫폼들이 ’10초 앞으로 가기/ 뒤로 가기’ 기능이 없다는 것 등이다. 10초 앞뒤로 감기 기능이 왜 없는지, 사실 이건 저도 좀 불만인데 그걸 당장 우리가 어쩔 수는 없는 것이니 만약에 우리가 오디오북을 다시 만든다면, 이런 걸 다 계산해서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예 짧게 여러권으로 나눠서, 듣기 쉽게.
또, 오디오북 파일을 어느 한 허브에 전달하면 거기서 장애인도서관에 한번에 쫙 뿌려주는 형태도 아니다. 여기저기 다 따로 연락을 드려야 하는 부분도 이번에 알았다.
배우 박정민, 대표 박정민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고, 배우이기도 하다. 어떤 일이 더 어렵나?
둘 다 다른 종류로 어려워서…. 배우라는 일은 아주 많은 사람과 협동해야 하는 일이고, 아주 큰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 안에서 내 어떤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일이고. 망했을 때도 배우가 훨씬 더 타격이 크다. 본업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해서, 그래서 여러모로 배우가 훨씬 어렵다. 더 잘 하고 싶기도 하고.
출판사 일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어려운 것 같다. 모르는게 많아서 주변 사람들을 좀 귀찮게 하고, 대표다 보니까 꼼꼼하게 살펴야 하고, 창의력을 발동시키는 게 아니라 진짜 관리를 하는 일이니까 빵꾸나면 안 되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자꾸 주변에 피해를 드리는 것 같아서 죄책감도 든다.
무제 홈페이지에 “귀찮은 마음에 세상에 내던진 이름을 다시 회수한다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살피고 듣고 기록한다”라고 썼는데, 직접 쓴 건가?
그렇다. 아무 생각 없이, 이름 짓기 귀찮아서 출판사 이름을 ‘무제’라고 지었는데, 첫 책 <살리는 일>이 우리 출판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좀 제시해준 게 있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은데, 이 책은 ‘동물권’에 관한 이야기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동물권에 대해 이야기하면 좀 불편해 하지 않나
그런 분위기가 있다
나도 그랬다. ‘나 살기도 바쁜데’라는 마음을 어쩔 수 없이 먹었던 것 같다. 그 책을 만나기 전에는. 그런데 <살리는 일>을 쓴 박수영 작가를 만나서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편견이 되게 심했구나, 생각했다. 동물권을 말하는 사람들이 “사람을 괴롭히려거나, 혹은 사람의 것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런 게 우리 출판사의 이름과 연결이 된다는 걸 알았다.
이름 짓기 힘들어서 ‘이름 없음(무제)’라고 사업자를 만들어 놓은 건데, 어쩌면 이걸 잘 연결 지어서 앞으로 우리가 계속해 이런 것들(이름 없는 것들)을 찾아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겠다고. 배우 생활하면서 팬도 생겼고 인지도도 쌓이고 하는데, 그걸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거면 괜찮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돈을 왕창 벌어서 그걸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마음이면 저도 좀 거부감이 있을텐데, 이 정도는 내가 내 인지도를 이용해도 욕 안 먹겠단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우리 회사가 나아가야 하는 길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다. 적어도 우리 회사가 가는 길에 있어서의 책임감.
그 인지도라는 것이, 도움도 되지만 부담도 될 것 같다
맞다. 내 철칙 중 하나가 ‘이 일이 내 본업에 피해를 끼치면 언제든지 빠져나간다’다. 본업까지 해쳐가면서 이 일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균형을 잘 맞춰야 하겠다.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충분히 이해를 한다. 그때그때 계속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박정민 대표가 만드는 책이, 독자들에게는 어떤 메시지로 다가갔으면 하나
모든 출판사가 다 그렇겠지만, 이 책을 내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주일에 서너권씩 만드는 대형출판사가 아니니까. 1년에 목표는 네다섯 권이지만, 꾹꾹 눌러서 만드는 책이라면 분명히 명분이 있어야 하고, 그 명분과 의미가 꽤나 중해야 한다고도 생각을 한다. 우리가 만드는 책의 색깔과 방향성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걸 독자들에게 무겁게 전달하고 싶지는 않다. <자매일기>라는 책을 보면, ‘삶을 이렇게까지 산다고?’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가들에 되게 마음이 쓰인다. 그렇지만 디자인은 예쁘게 만들었다. 일러스트도 넣고, 책도 예쁘게 디자인해서 독자들에게 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저는 좀 있다. 의미는 중요하게, 콘텐츠 자체는 무겁지 않게. 무제는 그렇게 하려고 생각 중이다.
모든 인터뷰마다 공통으로 하는 질문이 있다. 지금 가장 고민하는 게 무엇인가?
‘첫 여름 완주’ 홍보 어떡하지? (웃음). 코엑스에서 하는 도서전에도 나간다. 그건 또 어떡하지?
직접 나가나? 인파가 엄청 몰리겠다
당연히 간다. 인파가 몰릴지 아닐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콘텐츠를 어떤 걸 가져가야 할 지 기획해놓은 것도 있다. 하다못해 굿즈를 어떻게 만드나 이런 것부터 다 고민을 해야 하니까.
책을 만들 때 어느 정도 관여하나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 관여할 수밖에 없다. 계약을 하고, 원고를 읽고, 교정도 보고. (앞서 책을 많이 읽느냐는 질문도 있었는데, 그 답을 여기에 붙인다. 박 대표는 최근 <첫 여름, 완주>를 읽으면서 다른 책을 읽지 못했다고 말했다). <첫 여름 완주>를 지금 거의 10번 넘게 읽었다. 내가 모든 걸 다 체크해야 한다.
심지어 우리는 오디오북을 만들지 않았나. 대본 형식으로 되어 있으니까, 녹음할 때도 계속 읽어야 한다. 배우가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는지도 읽어봐야 하고, 효과음을 넣으려면 그 부분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읽어야 하고, 음악을 만들려면 또 어느 부분에 어떤 음악을 넣을지 고민해야 해서 읽는다. 굿즈를 만들려고 해도, 어느 문장을 써서 굿즈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생각해서 계속 읽을 수밖에 없다. 교정지가 오면 읽고, 디자인이 오면 체크해야 해서 읽고.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은 없지만, 그래서 계속 읽는다.
마지막 질문이다. 배우로서, 대표로서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달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부끄러운 말일 수 있는데, 출판사 일을 하다보니까 “내가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배우라는 직업에 있어서 타성에 젖어서 하고 있구나” 하는.
왜 그런 생각을 했나?
출판사 일을 하면 너무 피곤하고 생각할 것도 많다. 아직 적응이 안 돼 있기도 하고 혼자 하기에 버거운 일이라서기도 하겠지만, 퇴근할 때마다 요즘 그 생각을 계속 한다.
“왜 연기할 때는, 영화를 찍을 때는 이렇게까지 피곤하지 않지?”
촬영장에서도 나 되게 고생했는데, 막 이렇게 진짜 잠이 쏟아지는 피곤함을 왜 못 느끼는지 생각하다보면 내가 덜 열심히 해서 그랬단 생각이 든다. ‘내년이든, 후년이든 일이 생겨서 촬영 현장에 가게 되면 내가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열심히 해봐야겠다, 그럼 피곤할까’이런 마음도 들고. 출판사 일을 하면서 본업에 대한 리프레시도 되는 것 같다.
(마지막이라고 해놓고 미안하지만)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 배우와 대표 중 더 재미있는 일은 뭔가
더 재밌는 거야, 배우가 재밌다.
더 재밌어서 덜 힘든 건 아닌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일을) 힘들게 하는 요소는 영화 현장에 훨씬 많다. 지뢰처럼 있으니까. 안 피곤한 건 내가 좀 덜 열심히 해서 그렇지 않을까 계속 생각하게 됐고, 돌아가서 열심히 해볼 계획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