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35회) 알리칸테 : 시간이 지나도 한결같은 지중해 도시

2024-09-24

멀고도 가까운 나라 스페인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 올해 73주년을 맞은 유럽의 전통우호국이다. 과거에는 투우와 축구의 나라로만 알려졌으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주요한 유럽 관광지다. 관광뿐 아니라 양국의 경제· 문화 교류도 활발해지는 등 주요한 관심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연재를 통해 켈트, 로마, 이슬람 등이 융합된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알리칸테는 이베리아반도 동부 해안에 있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휴양지다. 필자가 스페인에서 공부할 때 홈스테이 아주머니 인 마리아 가족네와 함께 여름 휴가를 갔던 곳이다. 알리칸테는 강렬한 태양과 깨끗한 해변, 평화롭고 조용한 산책로가 인상적이다. 플리마켓에서 물건값을 깎아주던 인심 좋은 이들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이곳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마을 골목을 걷다 보면 집주인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감상하라고 화분 여러 개를 하얀 벽과 문 앞에 걸어 놓을 줄 아는 여유와 배려가 좋았다. 이렇게 알리칸테는 스페인 사람들의 여름철 숨은 휴양지이다. 역사적으로는 지중해와 가장 가까워 지중해 문명이 흘러든 곳이다.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그리고 나중에는 아랍인이 차례대로 새로운 무역로를 찾아 이곳으로 왔다. 그들을 따라 다양한 문화도 꽃피우게 된다.

이 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산타바르바라 성(城)이다. 버스를 타고 산타바르바라 성에 올랐다. 성은 도시에서 가장 높은 산인 몬테 베나칸틸의 기슭에 있다. 이 산은 해발 고도가 낮지만, 도시를 내려다보는 웅장한 암벽으로 되어있다. 산타 바르바라라는 이름은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왕자가 성(聖) 바르바라의 날인 12월 4일에 이슬람 군대로부터 뺏었기 때문에 붙었다. 17세기 이후 여러 차례 전쟁을 거쳤지만 살아남았고, 1963년에 복원되어 공개되었다. 성은 세 구역으로 나뉜다. 오래된 예전 요새가 있는 토레타, 펠리페 2세의 홀과 다른 주요한 건물이 있는 중간 구역, 그리고 18세기에 지어진 레벨린 델 본 레포스를 포함한 하부 구역이다.

투박해 보이는 성 위에 오르면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지중해가 파노라마로 내 품에 안긴다. 마침 비가 오고 구름이 끼어 약간 아쉬웠지만, 도시는 본디 연한 파스텔 색조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다. 눈을 감고 양팔을 벌리면 시원한 바람이 내 몸을 기분 좋게 감싸 돌아나간다. 인증사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으로 내 마음속에 담아가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느낄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지중해의 푸른 빛이 충분히 내 눈을 즐겁게 할 무렵, 요새 아래에 있는 구시가지로 자연스레 눈길이 옮겨진다. 이 오래된 성벽 도시는 좁은 골목으로 다닥다닥 연결되어있다. 아기자기한 집과 카페가 모여있는 산타 크루즈 지구로 걸음을 옮겼다. 알리칸테에서 가장 예쁜 거리라고 할 수 있다. 가파른 언덕길 계단을 오르면서 작은 집들과 예쁜 바와 카페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개성 가득한 주인들의 취향에 따라 파스텔 색조 색으로 꾸며져 있고, 집 대문 앞에는 작은 식물이 자라는 화분을 소담스럽게 놓았다. 전형적인 스페인의 여유를 느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근사한 카페나 바가 나오면 커피를 마시거나 계단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다 보면 금방 시간이 간다.

알리칸테는 다양한 입맛을 돋우는 현지 쌀 요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생선 밥인 아로즈 아 반다(arroz a banda), 오징어 밥 아로즈 네그로(arroz negro) 등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아 시장기를 잠재우기에 좋으니 꼭 도전해보시기를 추천한다.

이은진 스페인전문가·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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