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인 CSOT가 잉크젯 프린팅 기술로 8.6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양산에 도전한다. 잉크젯으로 8.6세대 OLED 상용화를 추진하는 건 CSOT가 처음이다. 삼성디스플레이 등 경쟁사를 추격하기 위한 기술로 잉크젯을 선택해 주목된다.
CSOT는 중국 광저우에 8.6세대 유리원장(2290㎜×2620㎜) 기준 월 2만2500장을 생산할 수 있는 잉크젯 프린팅 OLED 라인을 구축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회사는 'T8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오는 11월부터 2027년 10월까지 총 24개월간 295억위안(약 5조7719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투자금의 절반은 CSOT와 광저우시 정부가 6대 4 비율로 부담하고, 나머지 절반은 은행 등에서 조달할 예정이다. CSOT는 이 8.6세대 라인에서 태블릿, 노트북, 모니터 등 정보기술(IT)용 OLED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세대'는 유리원장 크기다. 4세대, 6세대, 8세대와 같이 세대가 높아질 수록 유리가 커진다. 이는 하나의 원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패널 수, 즉 디스플레이 수가 늘어난다는 의미다. 14.3인치 패널 기준 6세대 설비가 라인 1개에서 연간 450만대를 만드는 반면 8.6세대 설비는 1000만대까지 생산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생산성이 향상되지만 세대가 높아질 수록 그 만큼 제조도 까다로워진다. 양품을 만들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수율을 확보하지 않으면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
OLED 시장 1위 삼성디스플레이가 차세대 디스플레이 시장 선점을 위해 2022년 8월 8.6세대 OLED 투자를 결정하고, 2024년 3월부터 라인 구축을 본격화했는데, 중국이 이를 추격하는 양상이다. CSOT는 전 세계 디스플레이 업계 중 네 번째,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중에서는 BOE·비전옥스에 이어 세 번째로 8.6세대 투자를 결정했다. LG디스플레이가 회사 사정으로 8세대 투자를 확정 짓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세 곳이 투자에 나선 것이다.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석권했을 때와 같이 중국이 규모와 가격을 앞세워 8세대 디스플레이 시장 공략에 나설지 우려된다.
CSOT는 잉크젯 프린팅(IJP) 기술을 8.6세대 OLED에 적용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이는 진공 상태에서 유기재료를 가열해 발광층을 증착하는 일반적인 OLED 제조 방법과 달리 프린터처럼 노즐을 통해 유기물을 분사, 화소를 만드는 기술이다.
IJP는 기존 열증착 방식 대비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고 바로 화소를 인쇄할 수 있기 때문에 대면적 패널 제작에 유리하다. 또 마스크를 사용하는 공정과 부품 소모, 화소 형성과정에서 유기재료 낭비를 줄일 수 있어 효율적이다. 양산 성공 시 시장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유기재료 농도나 두께 균일도를 형성하는 기술 등 난제가 있는 데다, 파인메탈마스크(FMM)로 화소를 만드는 방식에 비해 해상도나 양산 능력(수율)이 떨어지는 문제 때문에 그동안 양산에 이르지 못했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CSOT가 최근 소개한 적용처별 패널 해상도는 FMM OLED 대비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며 “해상도와 양산성의 문제를 얼마나 극복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CSOT는 지난해 말 우한에 위치한 5.5세대 생산시설(T5)에서 IJP 기술로 의료용 IT 패널을 양산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디스플레이 비즈니스포럼'에서는 최대 326PPI(인치당 픽셀수)의 스마트폰용 OLED를 비롯해 IT 및 TV용 OLED도 IJP로 개발했다고 소개한 바 있다.
김영호 기자 lloydmin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