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 의장국인 한국 정부가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의 국제노동기준을 수립하기 위해 실시한 ILO 설문에 대부분 ‘반대’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의 불안정성이 커지자 ILO는 새 국제노동기준을 수립하기 위한 첫 공식 회의를 연다. 노동계는 한국 정부가 플랫폼 노동자들의 불안정성을 개선하기 위한 고민이 없다고 비판했다.
1일 ILO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한국 정부는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들의 ‘새로운 국제노동기준 수립 설문’에 대부분 반대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답변 국가 140여개 중 130여개 국가들이 찬성 의견을 내놓은 항목에서 반대 의견을 표명한 경우가 많았다.
2일부터 13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ILO의 113차 국제노동대회(ILC)가 열린다. 이는 ILO 연차총회로 노동 분야 국제 현안을 논의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전 세계 187개 회원국의 정부·사용자·노동자 대표들이 모인다. 이번 총회에서는 ‘플랫폼 경제에서의 괜찮은 일자리’라는 의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플랫폼 노동의 국제노동기준을 수립하기 위한 첫 공식 논의다. 적절한 임금 수준, 불안정한 고용상태 개선 방안, 사회적 보호 대책 등 국제 사회에서 합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한국 정부는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단체교섭권’, ‘최저임금 보장’, ‘산업안전보건 조치’, ‘고용관계 분류 정기 검토’ 등을 새 국제노동기준에 넣는 것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가 결사의 자유·단체교섭권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140개국 중 6개국만 반대했는데 한국이 포함됐다. 한국 외에는 일본, 아르헨티나, 보스니아 및 헤르체고비나,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뿐이었다. 정부는 “자영업자와 경쟁법 간 관계에 관한 논란으로 인해, 결사의 자유에 관한 사항은 새로운 국제노동기준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한국 정부는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보수가 법정 최저임금 또는 단체협약에 따른 최저임금과 동등한 수준이 되도록 보장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139개 중 118개 국가가 찬성 의견을 표명한 사안이지만 정부는 “개별 작업의 완료에 따라 보수가 지급될 때 노동자들 간 노동 시간 투입량이 다를 수 있다. 투입된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산업안전보건조치를 준수하고 플랫폼이 부담하는 산업안전보건 의무의 이행에 협력해야 한다는 질문에도 131개국 중 131개 정부가 찬성했지만 한국은 반대했다.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제재로 이어질 수 있는 협력 의무를 포함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고용 관계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이 제대로 분류되는지 정기적으로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규정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법률을 검토하고 개정하는 과정이 경직되고 형식적으로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한국은 지난해 6월부터 이달까지 1년간 ILO 의장국이다. 노동계는 비임금 노동자가 86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플랫폼 노동자들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부가 이를 개선할 의지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윤애림 민주노총 법률원 부설 노동자권리연구소 소장은 “이번 ILO 회의는 국제 사회가 노동 기본권을 차별 없이 보장하는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리”라며 “한국 정부도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