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페라는 문턱이 높다. 일단 오페라 한 편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십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여차저차해서 오페라를 보게 되었다 해도 복잡한 줄거리, 알아듣지 못할 외국어 아리아 등으로 초심자는 공연을 제대로 즐기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즐길 만한 예술로 자리잡기 어려워지고, 보던 사람만 보는 ‘그들만의 리그’는 굳어진다.
오페라의 진입 장벽을 걷어내다 — 그런데 이런 진입 장벽을 낮추다 못해 아예 없앤 오페라 공연이 펼쳐진다. 다음달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서울시오페라단의 ‘제3회 광화문광장 야외오페라’ <마술피리>. 공연 관람료는 무려 무료다. 이틀의 공연을 위해 준비된 약 2000석의 객석은 예매 시작 1분 만에 매진됐다고 한다. 첫 공연인 2023년 1회 <카르멘> 때는 약 5시간 만에 좌석이 매진됐는데 지난해 2회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3분 컷’이었고, 올해는 그야말로 피가 튀기는 티케팅 전쟁 ‘피케팅’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만큼 앞선 야외오페라 공연에 대한 입소문이 좋았기에 벌어진 일이다.
세종문화회관이 준비한 객석은 매진됐지만 야외 무대인 만큼 별도의 티켓 구매 없이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무대를 광화문광장이 아닌 세종문화회관 중앙 계단에 설치해 관람 가능 거리를 늘렸다. 대형 LED 화면도 함께 설치해 광화문광장 건너편에서도 불 수 있을 정도로 준비했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나들이차 광화문광장을 들렀다 오페라를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도심 광장을 오가며 오페라의 매력에 빠지는 사람이 하나둘씩 늘어나면 콧대 높은 오페라의 문턱도 낮아질 수 있다.

오페라 무대 위 ‘아마추어들’ — 문턱을 낮춘 대상은 관객만이 아니다. 이번 야외오페라 공연의 또 다른 특징은 프로 성악가뿐 아니라 아마추어들에게도 문호를 활짝 개방해 무대 위에 서도록 했다는 데 있다. 공모를 거쳐 지난 3월 선발된 시민합창단 단원들이 오페라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연세여아름, 카사코러스, 늘푸른연세, 서울여성콘서트 합창단이 공연 연습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술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꿈의 무대’에 오르게 된 합창단원들의 벅찬 감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1회부터 공연을 함께한 연세여아름합창단의 허경석 단장은 “합창단을 하기 전까지 저도 거의 안 봤을 정도로 일반 사람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게 오페라”라며 “지난해 여든 평생 처음 오페라를 본 어머니와 장모가 ‘올해도 꼭 불러달라’고 했는데 표가 일찍 매진돼 광장에 모시게 됐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전직 여성 승무원 합창단인 카사코러스 김혜순 단장은 “단원들끼리 ‘전생에 나라를 두 번 구한 게 분명하다’고 얘기할 정도로 특별한 경험”이라며 “단원들은 매일매일 기적 같은 즐거움으로 ‘우리 생애 최고의 날들’이라며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듣기엔 익숙, 부르기앤 초절정 기교 ‘밤의 여왕 아리아’
많은 이들이 오페라를 어렵다고 하지만 실상 널리 알려진 오페라에 등장하는 아리아들은 굉장히 친숙하다. 광고나 영화 등 각종 예술 장르와 매체에서 워낙 많이 등장해 친숙한 멜로디가 많다. 이번 야외오페라 <마술피리>는 특히 한국인들에게 소프라노 조수미의 밤의 여왕 아리아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 속에 불타오르고’로 익숙하다. 난도가 매우 높아 성악적 기교가 필요한 데다 연기력이 중요한 아리아다. ‘밤의 여왕’으로 유명한 독일의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가 “올림픽 단거리 경주에서 매번 신기록을 세워야 하는 처지와 비슷하다”고 했을 정도다. ‘밤의 여왕’ 역을 맡은 소프라노 문현주는 이날 아리아 시연 뒤 “단순히 고음이 문제가 아니라 테크닉, 호흡에 눈빛 연기까지 더해져야 하는 어려운 역할”이라면서도 “시민들과 함께하는 좋은 기회의 무대이니 만큼 최선을 다해 밤의 여왕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마술피리>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1791년 타계하기 두 달 전 완성해 초연한 모차르트 최후의 오페라 작품이다. 많은 오페라가 이탈리아어로 불려지는 것과 달리 독일어 노랫말에 대사까지 번갈아 나오는 ‘징슈필(Singspiel)’ 형식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한국어 대사와 독일어 노래로 불려진다.
아마추어 합창단원들에겐 원어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점이 어려운 대목인 동시에 중점적으로 연습하는 부분이다. 김혜순 카사코러스 단장은 “지난해 야외 오페라 공연에서는 이탈리어로 가사를 암기했는데, 이번에는 AI앱으로 (독일어) 가사를 입혀 온 영상을 보며 연습하고 있다”며 “기술이 발전하면서 노래 연습도 점차 스마트해지고 있다”고 했다.
‘프로’ 제작진과 출연진도 이번 공연에 기대가 크다.
김광현 지휘자는 “노래와 연극의 융합인 징슈필 장르 자체가 엄청난 대중성이 있다”며 “모든 시민들이 광장에서 즐겁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장재호 연출은 “마술피리는 연출가에게는 커다란 선물”이라며 “연출가의 선택에 따라 마지막을 비극적으로도, 희극적으로도 끝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아마추어 합창단과의 연습에 어려움이 없느냐’는 질문에 “30년 오페라 연출을 하다보면 해이가 되고 굳어진 부분이 많은데 오히려 그들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걱정되는 게 있다면 날씨다. 야외 무대인 데다 오케스트라가 현장에서 연주를 하기 때문에 비가 오면 예정된 공연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예술감독인 이혜진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은 “공연 가능한 일정 중에 가장 비가 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를 잡았다”고 했다. 이 단장은 “시민합창단의 열정과 오페라를 잘 모르던 관객이 오페라 팬이 되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야외오페라가 100회까지 갔으면 하는 소망”이라고 말했다. 야외오페라 <마술피리>는 다음달 1~2일, 오후 7시30분 광화문광장 놀이마당에서 공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