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의 주요 사망 원인은 과거에는 감염성 질환이 많았으나, 현대에는 만성퇴행성 질환이 많다. 10대 사망 원인 중 암, 뇌혈관질환, 당뇨병, 고혈압은 음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암에 좋은’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암에 좋은 음식, 암에 좋은 차, 암에 좋은 과일, 암에 좋은 버섯 등이 자동으로 생성된다. 각종 암에 대하여도 상세한 정보가 나온다. 당뇨병에 좋은 음식, 당뇨병에 안좋은 음식도 검색 된다. 어떤 질병에 대하여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식품이나 음식이 건강과 병에 특별한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을 푸드 패디즘(Food faddism)이라고 한다. 이를 식품과학사전에서는 식품유행이라고 명명항렸다.
푸드 패디즘은 효과를 과대평가하면서 건강 증진을 위해 특정한 식품을 먹는 식사요법. 또는 그런 식사 형태의 일시적 경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식품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 지식이 풍부한 사람도 건강에 관한 과학적이지 않은 정보는 쉽게 믿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쌀, 설탕, 소금은 흰 색을 띄는 식품으로 이들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많다. 과연 그런가 살펴보고자 한다. 쌀은 혈당을 급격히 올리므로 당뇨병이 있는 경우 피하라고 한다. 우리는 에너지를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으로부터 얻게 되는데, 탄수화물 섭취를 안한다면, 단백질과 지방의 섭취 비율이 많아지게 된다. 곡류가 당뇨에 안좋은 식품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적정량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흰 눈 같은 당이라는 설당(雪糖)에서 유래한 설탕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설탕은 사탕수수, 사탕무우를 정제하여 만들고, 포도당(glucose)과 과당(fructose)으로 구성된 이당류인 서당(sucrose)이다. 국민 소득이 증가할수록 설탕의 소비는 증가하는 특성이 있다. 건강을 우려하여 소비를 줄이고자 세계 여라 나라에서는 설탕세까지 도입하였다.
대사증후군 유병율은 설탕 뿐 아니라 가당음료 섭취가 증가할수록 증가한다는 근거 하에, 한국인 영양소섭취기준에서는 총 당류 섭취를 1일 에너지 섭취량의 10~20% 이내 섭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최근 한국인의 당류 섭취량은 과일류, 음료 순으로 나타났으며, 주요 급원 식품은 사과, 설탕, 우유, 콜라의 순으로 나타났다. 즉, 건강을 위해서는 설탕 섭취만 줄일 것이 아니라 당을 공급하는 식품들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
또 하나의 흰색을 띄는 식품인 소금은 나트륨의 급원이다. 나트륨은 체내 항상성 유지와 신경 자극 전달, 근육 수축 등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인의 1일 나트륨 충분섭취량은 1,500mg으로 정했지만, 과다하게 섭취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으므로, ‘만성질환 위험 감소를 위한 섭취량’을 2,300mg으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성인의 60~80%가 ‘만성질환 위험 감소를 위한 섭취량’보다 많은 나트륨을 섭취하고 있다. 반면, 충분섭취량 미만의 나트륨을 섭취하는 성인도 10%대로 나타나고 있다. 나트륨 급원은 소금이 제일 많으며, 그 다음으로 간장, 배추김치, 라면, 된장, 고추장의 순으로 보고되고 있다. 나트륨 섭취를 줄이기 위해서는 소금 섭취만 줄일 것이 아니라, 양념류, 김치, 젓갈의 섭취량을 줄이거나 싱겁게 만들어야 하고, 라면・국수 등 면류의 국물과 국・ 탕・찌개 섭취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한의학에서 상극은 서로 반대되는 효능을 지니고 있어서 함께 쓸 경우 효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상극이 음식에 적용되면서 자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상극 음식의 대표적인 예는 무와 당근이다. 당근에 들어있는 아스코르비나제(ascorbinase)가 무의 비타민 C를 파괴하므로 함께 먹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다양한 채소에는 비타민 C가 많이 들어 있으므로, 당근의 비타민 C 분해효소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오히려 당근의 주황색 색소인 카로틴은 체내에서 비타민 A로 전환되는데, 비타민 A는 눈과 피부 건강, 면역을 증강시켜 주는 필수 영양소이다. 한국인의 주된 비타민 A 섭취 급원은 당근으로 보고되고 있다. 당근 섭취를 제한하는 것보다는 지용성 비타민의 흡수를 돕도록 당근을 기름을 넣고 볶든지, 식물성유 소스를 넣은 샐러드를 만들어 먹도록 안내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시금치와 달걀을 함께 먹으면 시금치에 많이 함유된 옥살산에 의해 결석이 생성되므로 상극이라고 한다. 옥살산은 시금치 외에도 다양한 식품에 들어 있으며 가끔 섭취하는 양으로는 결석이 생길 우려는 적다고 한다. 치킨과 맥주를 함께 먹으면 통풍을 일으키므로 상극이라고 한다. 통풍을 일으키는 퓨린은 치킨 뿐 아니라 육류에 많이 들어 있어서 고대에는 통풍을 ‘제왕병’이라고 불렀다. 통풍 환자에게 치킨만 제한하면 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한 때 매스컴에서 어떤 식품이 좋다고 하면, 다음 날 시장에서 그 식품이 동이 난다고 뉴스에서도 보도하였다. 설령 건강에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음식만 많이 먹으면, 다른 음식 섭취가 상대적으로 제한되므로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할 기회를 빼앗는 결과가 된다.
건강에 좋은 음식, 건강에 나쁜 음식으로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인체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려면 다양한 식품을 섭취해야 한다. 건강을 위해서는 푸드 패디즘에 빠지지 말고 영양소를 적정량 섭취해야 한다. 그리고 적절한 운동과 휴식, 남을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도 필요하다.
박은숙 <원광대학교 명예교수, 전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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