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 편집일 15th 5월, 2025, 11:12 오전
국회입법조사처가 15일 발간한 「국가비상사태 극복을 위한 해외헌법규정례와 개선방향」 보고서는 국가의 긴급 상황에서 발동되는 ‘국가비상사태’ 제도의 법적 장치와 남용을 막기 위한 민주적 통제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국내외 법률과 헌법 조항을 비교, 국가긴급권 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 166개국, 헌법에 비상사태 명시…한국도 구체화 필요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97개국 중 166개국이 헌법에 국가비상사태 관련 조항을 명시하고 있으며,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자연재해와 테러, 전쟁, 내란, 경제위기, 감염병 유행 등 긴급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를 법적으로 마련해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자칫 권력자의 자의적 권력 행사로 이어질 위험이 있는 만큼, 명확한 절차와 엄격한 한계를 통해 민주주의 원칙 안에서 운용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고서는 유럽의 사례를 들며 비상사태 선포와 관련된 권한 행사에 대해 국회의 사전 동의 또는 사후 승인 절차를 의무화하는 방안, 국회 해산 금지, 의회의 활동 보장 등 입법부의 견제 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기본권 제한 최소화…생명권, 고문금지 등 절대불가침
또한 기본권 제한의 경우에도 제한의 범위와 대상, 지속기간 등을 법률에 명확히 규정하여야 하며, 비례성과 최소성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보고서는 국가가 비상사태라는 명목으로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인권 보호를 위한 제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기본권 중에서도 생명권, 고문금지, 노예금지 등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침해될 수 없는 절대적 권리로 간주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
한국 헌법상 계엄제도는 대표적인 국가비상사태 제도로, 전시·사변 혹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에 선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이에 준하는 상황’에 대한 정의가 불명확하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비무장 시위나 사회적 혼란 상황 등에서도 자의적으로 계엄이 발동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결국 이와 같은 불명확성을 해소하기 위해 계엄 또는 기타 비상사태 선포의 요건을 구체화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혼란을 방지하고 민주적 통제를 보장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강조한다. 나아가 국가비상사태 선포 이후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국회가 이를 의무적으로 조사하고, 필요시 행정부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후 통제 장치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헌법 및 법률 정비 시급…’법 위의 비상사태’ 없어야
사법적 측면에서는 비상사태 하에서도 법원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사법기능이 정지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제도도 요구된다. 이를 위해 일부 국가들은 비상사태 종료 시까지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구성원이 임기를 유지하도록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이는 비상사태 시기에도 법적 안정성과 사법적 감시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다.
결론적으로, 국가비상사태 제도의 목적은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있으나, 그 권한이 남용되면 오히려 민주주의와 인권을 해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역시 헌법 또는 법률 차원에서 비상사태 제도의 정의, 발동 요건, 권한의 한계, 기본권 제한의 범위, 의회와 사법부의 감시 장치 등 세부적이고 체계적인 개선이 시급하다는 결론을 보고서는 내리고 있다. 특히 현재와 같은 국제적 기준과 민주주의 원칙을 반영한 헌법 개정 논의가 필요하며, 위기상황에서도 인권과 법치주의가 지켜질 수 있는 견고한 제도 설계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