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 삼촌 가슴에 새겨진 슬픈 봄의 기억

2025-04-14

북촌리의 봄(하)

-순이삼촌, 그 옴팡밭에 발이 묶여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인가. 그 옴팡밭은 순이 삼촌의 숙명이었다.

너분숭이 동백나무에도 빨간 동백꽃이 피었다.

제주 어디를 가도 바람을 막으려고 심어놓은 동백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제주 동백꽃이 되었다.

이맘때만 되면 제주 어디를 가도 동백꽃이 피고 지는 풍경이 생겨난다.

빨간 동백꽃이 피어서도 고운데 떨어진 동백은 눈물 나게 곱다. 그 어떤 꽃이 떨어져서 고울 수가 있을까.

에어로폰 연주자 기보은 님은 <동심초>와 <대니보이>를 연주했다.

기보은 님은 제주에서 살고 있다. 바람난장이 있는 날은 색소폰 연주자인 남편과 같이 온다. 제주 사람 다 됐다고들 한다.

하지만 문 충성 시인의 <제주바다>라는 시에서 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를 다 알지 못한다고 하는데, 두 분은 얼마만큼이나 제주를 알게 되었으려나 궁금하기도 하다.

이어서 제주다운 이야기들을 연극무대에 올리고 있는 정민자 강상훈 연극인 부부가 현기영 소설가의 <순이 삼촌>의 일부를 낭독했다.

이 섬 출신이거든 아무라도 붙잡고 물어보라. 필시 그의 가족 중에 누구 한 사람이 아니면 적어도 사촌까지 중에 누구 한 사람이 그 북새통에 죽었다고 말하리라

순이 삼촌이 옴팡밭에서 음독자살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30년 전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마을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날 살아남은 순이 삼촌은 가족을 다 잃었다.

그 뒤 아이를 낳은 다음 옴팡밭을 일구면서 상처를 잊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왔지만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죽음은 이미 30년 동안 해를 묵힌 운명이었고 삼촌은 이미 그때 숨졌던 인물이며 그 상처가 30년의 기나긴 시간을 보낸 뒤 비로소 가슴 한복판을 꿰뚫어 당신을 죽게 한 것이라고 상수는 생각한다.

순이 삼춘을 듣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먹먹함이 들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죽은 사람도 산 사람도 4·3의 시간 속에서 아팠다.

죽어서 슬프고 남겨져서 슬프고, 아파도 아프다고도 못하고 살았던 시간은 누가 알아줄까. 그 아픈 시간을 살다가 이제는 그 아픔을 기억하는 사람마저 떠나고 나면 남은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위로할까.

소설의 무대인 북촌리 ‘너분숭이 제주 4.3위령성지’에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문학비는 누워있는 순이 삼촌을 모델로 한 조각상과 함께 소설 구절을 새긴 비석이 실제 희생자가 묻혀있는 ‘애기무덤을 중심으로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형태로 놓여 있는데 이는 ’북촌리 대학살 사건‘당시 옴팡밭에 뽑아 놓은 무처럼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희생자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다음 순서로 이석봉 클라리넷 연주자님의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연주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김종구 기타리스트가 이연실의 <이제는>을 불렀다.

많은 아픔의 시간에는 음악이 있었다. 음악으로 치유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서 서로를 위로한다.

북촌리 너분숭이/김정희

바람코지에 들어 소리도 숨 죽였다

바람에 날아가 버린 소리들은

구천을 맴돌고

정신없이 헝클어지는 머리

뚝뚝 떨어진 동백꽃은

검은 바닥으로 굴렀다

3월이어도 겨울은 물러서지 않고

애기무덤 돌 틈 속으로 스며들었다

바람과 같이

순이삼촌 걸어왔다 가는가

애기를 잠 재웠다

자장가를 불렀다

잠깐 해가 뜨거웠다

바람난장 펼치는 시간

먼 곳에 불이났다

너분숭이에 머무는 동안 순이삼촌의 넋이 바람처럼 왔다 갔는가. 즉석 시로 인사를 한다.

▲글=김정희 (시인, 아동문학가)

▲시=퍼포먼스 (김정희·이정아·이혜정 장순자 )

▲낭독=정민자·강상훈

▲음악=기보은·이석봉·김종구

▲음향=김종구

▲사진=허영숙

▲영상=김태현

▲총감독=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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