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정숙인 작가-이선애 '방울을 울리며 낙타가 온다'

2025-04-16

이삼십 대엔 월급을 타고선 월례처럼 서점엘 갔다. 요즘엔 서점보다 도서관의 서고에 더 매력을 느낀다. 다른 작가나 시민의 책을 골라 읽은 큐레이션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올봄, 전주시립 완산도서관의 <자작사색> 입주 작가로 3층 책장의 두 칸을 큐레이션 하게 되었을 때, 이선애 시인의 『방울을 울리며 낙타가 온다』를 선보인 적이 있다. 에로티시즘으로 읽어야 할지, 자기 구현으로 읽어야 할지. 그의 시는 상처투성이의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에 멈추지 않고, 공감 이상의 세계, 그 고통의 세계로 거침없이 들어가는 것이다. 상처와 어둠을 이해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함께 버티는 것이다. 그의 시는 매일의 뉴스, 내가 기억하거나 잊었거나 어떤 사건의 뒤를 추적하게 했다.

“산다는 것은 머리를 박고/ 목숨을 불꽃 위에서 꽃피우는 것”(「사랑의 기술 2 –가스레인지」) “꽃잎은 그렇게 죽음을 앞지른다” (「사랑의 기술 3 –업사이클링」) “들여다보면 희생도 이기적이다/ 강산은 그저 변하지 않고/ 나를 통하여 너에게 간다/ 악역은 늘 나의 몫” (「사랑의 기술 4 -전골」)

한때 저자의 스승이기도 한 이은봉 시인은,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 12년만인 2020년에 첫 시집을 낸 것에 대해 추천사를 붙이는 일이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꼼꼼하게 뜯어 읽어야 그의 시가 지닌 깊이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 시인 랭보의 말을 빌려,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며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향기 있는 시, 좋은 시를 쓰기는 어렵다고. 그가 제 시를 상처의 기록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기인한다고.

시인의 말에서

“한 발자국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공중을 펼쳐 놓고/ 발자국을 더듬었다./ 발이 푹푹 빠졌다 그때 낮게 하늘을 나는/ 한 무리 새들의 흰 배가 보였다./ 여린 숨결이 밀고 가는 굶주린 탈주/ 새들의 바닥은 하늘이구나!/ 오독의 천국에서 시간을 눌러 죽였다.”

그의 모든 삶과 공간은 슬픔과 고통을 기록하는 작업실로 존재한다.

“완성은 언제나 미완성보다 쓸모없는 것인가”(「안나푸르나 –산 혹은 밤」) “사라진 과거는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방울을 울리며 낙타가 온다」) “사라진 과거는 돌아오지 않고”(「공룡발자국 옹달샘」)

시인은, ‘내 몸’이 ‘어린 神이 태어나는 고요한 능선, 정신만 외롭게 빛나는 사막’임을 놓치지 않는다. ‘서늘한 카페’에서 ‘진한 아라비카 커피가 목젖을 적’시면 ‘실재와 악몽 사이에서 기호를 낳는 자궁’이 된다. 그의 과거는 지하도시 같은 비밀스러운 카페와 책꽂이가 가득한 도서관이나 자신의 서재와 같은, 침묵이 으르렁대는 절집, 또는 그의 모든 기록의 장소인 사람, 그 장소를 통해 공간과 시간을 낙타의 가시 돋친 붉은 꽃을 먹으며, 환골탈태의 고통을 견디고 버티지 않고서는 다다를 수 없는, 창작의 쾌감을 기다린다.

사라진 시간을 놓친 슬픔과 그리움, 자기검열의 공간. 그의 시 한편한편은 각각 하나의 방에 들어있다. 원고지 한칸한칸의 네모난 방에 든 것이다. 그의 시집은 아파트 한 동 같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았고, 언제나 현재형으로 살아있다. 그의 네모난 원고지, A4, 워드 자판은 세계로 난 모든 시로 향한 거울이다.

시인은 수없이 많은 방에, 과거의 기록을 가진 사람을 들이고 타자와 자신의 경계를 허문다. “한 줄기에서 태어난 수많은 잎사귀/ 똑같이 제 몫의 햇살 나누어 갖는다/ 그의 붓 자국이 내게로 건너온다”(「사람주나무」)

정숙인 작가는

201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백팩'으로 등단했다. 작품으로는 몇 편의 단편소설과 채록집 <아무도 오지 않을 곳이라는, 개복동에서>(201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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