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때는 여행 갈 때 백과사전처럼 두툼한 여행책을 샀다. 요즘 2030 나이대의 내 친구들은 낯선 도시로 떠나기 전 숙소 근처의 요가원이나 수영장, 러닝하기 좋은 곳을 찾는다. 우리 때는 술 마시고 해장국을 먹은 후 아침 첫 전철로 귀가했다면, 내 젊은 친구들은 저속노화 식단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비건 식당을 찾아다니고 ‘텍스트 힙’이라며 도서박람회에서 산 책을 에코백에 넣어 다닌다. ‘라떼는 말이야’라고 도저히 으스댈 수가 없는 것이다.
얼마 전 나는 MZ세대인 내 친구로부터 헬스장 이용권을 선물받았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적금처럼 등 근육을 적립해놓아야 굽은 등이 펴진다나 뭐라나. 갱년기에 필요한 건 근력과 체력인데 시든 오이처럼 근육이 물렁물렁한 내가 걱정이 된다나 뭐라나. 걔들은 웬만해서는 생일 선물을 물건으로 주지 않는다. 내 시간을 벌어주거나 일을 해준다. 옥상 텃밭에 산발한 깻잎대 정리, 고장 난 피아노 수리, 시민단체 후원 같은 선물을 안겨주는 식이다. 올해에는, 동네에서 러닝을 하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니 강제적으로 운동을 주입하겠다는 거였다. 그 마음에 감읍해 생전 처음 새벽에 달리는 친구를 따라 해돋이를 보았다.
정말 러닝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빨리 뛰는 사람, 걷듯이 살살 뛰는 슬로 러너, 달리기 앱을 켜놓고 혼자 뛰는 사람, 커플 둘이서 혹은 ‘러닝 크루’를 이뤄 떼로 뛰는 사람들… 다들 취향껏 달리고 있었다. 무슨 운동을 하든 ‘장비빨’부터 갖추는 한국인의 취미 및 특징에도 러닝에 필요한 건 튼실한 무릎뿐이었고, 정 사야겠다면 무릎 보호대 정도였다.
이들이 유행시킨 ‘고프코어’ 패션이란 작업복 조끼와 등산 바지에 구두를 믹스 배치한 동묘 아저씨 패션에 영감을 받아, 다들 하나씩은 있을 법한 ‘런닝구’와 바람막이 점퍼, 레깅스 등으로 완성된다. 그들은 지금 이곳의 도시에서 온몸의 땀구멍으로 계절감을 들이켜며, 골프 퍼터처럼 위신을 드러낼 장비도 없이, 무릎 보호대에 의지해 온몸을 쓴다. 무더위와 비와 추위와 바람을 맞으며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인증샷을 올린다.
이들이 환경운동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골프장 대신 러닝을 선택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저 취향이 바뀌면서 선호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변했고 결과적으로 이전 세대와는 다른 라이프스타일이 직조되는 중이다. 굿즈를 사느라 재산을 탕진하기도 하고 종종 태국 빠이나 일본 교토행 비행기를 끊기도 할 것이다. MZ세대가 다 같지도 않다.
분명한 건 이들이 환경운동은 불편하고 금욕적이고 종말론적이라는 명제를 상쾌한 지속 가능성으로, 대세를 바꿔나간다는 점이다. 나 좋다고 하는 운동이 저탄소 라이프스타일이 되었달까.
지금 세대는 도파민 가득한 중독적 쾌락 대신 뭉근히 지속되는 쾌락과 자기만족적 효능감을 찾아간다. 그들을 보며 “욕망하도록, 더 잘 욕망하도록, 더 많이 욕망하도록,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방식으로 욕망하도록 가르칠 것”이라던 역사학자 E P 톰슨의 말을 떠올렸다. 더 많이 더 빨리 소비하는 욕망이 아닌 다른 욕망을 배운다. 이 세대는 내가 운영하는 제로 웨이스트 가게를 먹여 살리는 주역이기도 하다.
